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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탈출할 수 있을까

등록 2021-11-27 11:38 수정 2021-11-30 05:02
1390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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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을, 일본 도쿄 미타카시. 지브리 미술관이 있다는 공원 앞을 지나, 빵집에 도착했다. 빵을 만들어 팔지만, 엄밀히 말하면 빵집은 아니다. 1층에 몇 종류의 빵과 과자를 파는, 소박한 가게가 있긴 하다. 위층에는 빵 만드는 공장 비슷해 보이는 시설도 있다. 빵이 이곳의 주인공은 아니다. 빵은 이를테면 무대 소품이다. 히키코모리 청년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도록 도와주는. 건물 안에 있는 다른 사무실에서는 청년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빵을 만들며 직접 일하는 경험도 해본다. 이곳은 히키코모리 청년이 사회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문화학습협동네트워크가 운영하는 사무실이었다.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는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였다. 당시 히키코모리는 70만 명, 진학·취업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NEET)는 80만 명으로 추산됐다. 방 안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였지만 이제는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이곳의 직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20대 청년 6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조직폭력배 같은 직장 상사한테 괴롭힘을 당한 뒤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20살 때 친구와 크게 싸우고 상처받은 뒤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4~5년 히키코모리로 살았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이들은 말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웅크린 청년들을 지원하는 단체나 기관이 하나둘 생겨나던 참이었다. 일본에서 1989년 설립된 히키코모리 지원 사회적기업 ‘K2 인터내셔널’이 2012년 한국에도 문을 열었고, ‘무중력 상태’에 놓인 청년들과 유유자적하며 만나는 사회적기업 ‘유유자적살롱’(유자살롱)도 있었다.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의 상황은 상당히 닮았다. 5년 뒤쯤엔 한국에서도 청년들이 앓는 ‘마음의 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거다.” 히키코모리 문제를 연구한 야마모토 고헤이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교수를 만났을 때 들은 말이다.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21년 가을, 한국 곳곳에서 만난 ‘은둔 청년’ 25명의 이야기를 읽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발행하는 독립언론 <단비뉴스>의 기자 5명이 석 달에 걸쳐 ‘은둔 청년’ 25명과 가족, 전문가들을 만나 기록한 이야기를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싣는다. 어느덧 한국도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같은 단어가 낯설지 않은 사회가 됐다. 드라마 <구경이>의 첫 장면은 쓰레기가 가득 쌓이고, 바퀴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방 안에서 구경이(이영애 분)가 맥주를 마시면서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 역시 과거의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집에 틀어박혔다.

20대 시절, 두어 번 ‘은둔’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은둔’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열정을 쏟아부었다고 생각했던 일과 사람이 한순간에 싫어지고,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에 좌절했다. 몸도 마음도 아팠다. 사람들에 둘러싸이는 게 버거웠다. 방 안에 한 달 가까이 틀어박혀, 최소한의 삶을 살았다. 달팽이처럼 껍질 안에 숨어서 가족, 친한 친구와만 소통하고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는 외출도 잘 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책을 읽었다. 나를 가둔 것도, 나를 다시 세상으로 끄집어낸 것도 나였다. 하지만 웅크린 모든 이가 개인의 의지로만 좌절, 절망, 우울, 무기력, 고립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사회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본에서는 2005년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이 연계해 은둔 청년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도 한발 늦었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2019년 광주광역시가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만들었고, 2021년 부산과 전남도 조례를 제정했다. 그렇게 걸어가다보면, 우리도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은둔 청년들이 세상으로 걸어나올 수 있는 곳에.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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