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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를 기리는 사회의 품격

등록 2021-10-26 16:41 수정 2021-10-31 17:24

‘살아 있는 사람 취재하기도 쉽지 않은데….’

지난 여름 무연고 사망자들의 생애를 취재하기 위해 그들이 남긴 인연의 끈 한 자락을 붙잡고 땡볕 길을 걸을 때마다 불쑥불쑥 솟구친 푸념이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난, 관계 단절, 질병 등 ‘현상’ 이면에 있는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사회적으로 좀더 효과적인 고민과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망자의 삶을 취재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생각의 망치로 취재를 방해하는 얄궂은 푸념을 내리쳤습니다.

그러다 서울 영등포 쪽방 무연고 사망자 허일남(66·가명)씨의 동생 허수영(62·가명)씨를 만났습니다. 고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던 끝자락에 허씨가 들려준 자신의 딸 이야기가 퍽 인상깊었습니다. 허씨는 성인이 되도록 한 번도 삼촌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딸과 함께 오빠의 공영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장례식 뒤 딸은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엄마, 나 큰 감명을 받았어. 가족도 아닌데 사회가 이렇게 장례식을 다 치러주네. 삼촌이 값진 인생을 살다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세상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해주는 줄 몰랐어. 나도 이렇게 좋은 일 하는 거 본받으며 살래.” 이후 허씨의 딸은 고아원과 유기견보호센터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광고 전단조차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온다고 합니다. 허씨 자신도 몸이 아프고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은데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공영장례를 치러주신 분들의 고마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전여전’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연고 사망자들은 장례식이라는 버젓한 절차도 없이 ‘직장’(直葬)됐는데, 2018년 서울시에서 공영장례 조례가 생기면서 형식을 제대로 갖춘 공영장례가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데서 오랫동안 노력해온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에, 그리고 서울시의회 등 관계자들에게 취재 과정 내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사회에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그 선함을 본받아 실천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공영장례는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연고사와 고독사는 최근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무연고사·고독사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이 문제를 먼저 겪은 영국과 일본에서는 외로움, 고독, 고립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직까지 신설해 국가적인 의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법’이 시행됐습니다. 2022년 하반기에는 고독사에 대한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와 관련 통계가 처음 발표될 예정입니다.

한창 무연고사를 취재하는 중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불었습니다.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은 “승자는 패자의 시체 위에 떠 있는 것이고, 패자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연고사·고독사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다뤄지면, 이에 발맞춰 우리 사회를 가리키는 ‘각자도생’ ‘승자독식’ ‘패자부활전 없음’ 등 바싹 메마른 단어들도 사라지게 되길 바랍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한겨레21>이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대한 기록을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주소창에 remember.hani.co.kr을 입력해주시면 인터랙티브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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