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반년, 르포문학상 기획 <‘좋아요’ 사회>를 마쳤습니다.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원고를 쓰는 초반까지는 르포문학 장르를 만만하게 봤습니다. 인스타그램 현상 관련 책과 논문을 섭렵했고, 포럼과 다른 매체에 각각 같은 주제로 글도 냈으니 인터뷰만 따서 정리하면 될 일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애써 쓴 글을 처음부터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인터뷰는 그저 취재가 아닌, 상이한 입장과 섬세하고 복잡한 욕망들을 끄집어내어 마주하는 일이었습니다. 기존에 칼럼 쓰듯 글감을 인스타그램 이미지 자르듯 매끄럽게 ‘크롭’할라치면 그 고유함이 금세 지워졌습니다. 타자의 삶을 너무 전형적으로 그리지 않았는지, 그러면서도 ‘욕을 먹지 않기 위해’ 타협한 부분은 없는지, 인터뷰이의 삶을 노출하는 일에 충분한 합의를 하고 신뢰를 쌓았는지 계속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내 안에 들어온 타자의 목소리.” 르포작가 김순천이 ‘르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몇 가지 이야기’라는 주제로 쓴 글의 제목입니다. 이 타자들이 제 속을 어지럽히고 뒤흔든다는, 곧 기존의 나에 대한 ‘오염’이기도 하다는 것을 왜 나중에야 깨달았을까요. ‘1인칭 나’로 출발해 내 이야기를 매끄럽게 손질하거나, ‘보편자’를 자처하는 제3자 입장에서 쓰는 일과는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제 글을 피드백한 구둘래 기자님이 계속 주문한 것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근거해 이야기를 끌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맨눈’으로 보는 훈련의 연속, 그러니까 ‘기존의 나’를 허무는 연습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이번 글쓰기는 타인들에게 기꺼이 의존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흔쾌히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 이야기를 들려준 인터뷰이들은 물론, 제 글쓰기와 삶에 애정 어린 비판과 중요한 자료를 건네준 많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마감 사흘 전, 노트북에 아메리카노를 쏟았을 때 기꺼이 자신의 노트북을 빌려준 동료와, 요리 당번을 바꿔준 비혼 공동체 식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상호 돌봄과 관계 맺기임을 몸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간 글쓰기와 저를 지나치게 동일시했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소유’ 감각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이번 마감에선 다른 글들을 끝냈을 때처럼 짜릿함은 훨씬 덜하지만 세상과 좀더 연루되었다는, 덜 외로운 감각을 느낍니다. 인기와 유명세라는 게 정말 나의 욕망을 제대로 검토한 일이었을까. 이 과정을 통해 ‘인스타그램 유명세로 한밑천 번다’는 생각이 재구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르포문학 기획에서 다룬 주제는 ‘인스타그램 현상’ 중에서도 미미한 일부이지만, 이를 통해 마주한 바는 망망했습니다.
흔히 좋은 글쓰기를 위한 금과옥조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꼽습니다. 지금 이 말을 다시 곱씹습니다. 이 말에는 ‘주어’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 주어를 ‘나’라는 개인 단위로 읽었습니다. 지금에야 ‘우리들’이라고 고쳐 씁니다. 더 다양한 사람/삶들과 연루되고, 그렇기에 더 쉽게 쓰이지 않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번 <‘좋아요’ 사회> 말미에 적은 문장, “이 글쓰기를 통과하며 품게 된 밑천이다”를 이렇게 다시 한 번 길게 풀어 전합니다.
도우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