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B를 처음 만났습니다. 우주 탐구하는 소모임을 만들고, 텃밭 농사를 짓겠다고 사람을 모아댑니다. ‘나대는 애인가보군’ 생각하고 경계했는데, 이를테면 ‘낭만의 범주’에 드는 것들을 천진하게 좋아하는 모습이 또 좀 괜찮은 애처럼도 보였습니다. 어영부영 어울리다가 제일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저성장·저금리 시대 우리 또래 얘기를 써보려고. 그러니까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느낌으로.” 조금은 아이러니한 느낌을 살리려 ‘달콤한’에 힘을 주어 말합니다. 2020년 나와 B는 서른넷이 되어 있습니다. 돈 얘기는 별로 해본 적이 없으므로 어색합니다. B가 엑셀 파일을 펼쳐 보입니다. 자기가 가진 국내 주식, 외국 주식, 펀드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이 정도로 철저한 애인 줄 몰랐습니다. 약간의 배신감에 “순수한 척, 낭만적인 척하던 애가…” 꼬집습니다.
실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산책하러 나가서 아파트만 쳐다봅니다. 부동산 앱을 켭니다. ‘도심도 아닌데 되게 비싸네’ 싶다가, 당길 수 있는 대출과 부모님께 (어쩌면) 받을 수 있을지 모를 도움을 따져봅니다. ‘이 빚 다 갚으면 예순 살은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서울은 안 되겠다 싶어 지도를 경기도 어디쯤으로 넓혀 매물을 보고, 교통 앱을 켠 채 출퇴근 시간을 계산합니다. 마음 복잡합니다. 2년만 빨랐으면 가질 수도 있었을 법한 눈앞의 아파트가 아쉬운데, 청약 당첨된 친구들 아파트에 프리미엄 3억원이 붙었다는 소문은 또 어찌 그리 빠른지. 조급하지 않을 도리 없습니다. ‘역시 살 집을 찾더라도 값 오를 집을 골라야 해.’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리포트와 책에서 짚는 저금리·저성장의 영향력이란 것은 거의 세상만사이다 싶게 넓습니다. 산업, 고용, 재정, 정치적 갈등, 불평등, 사회 분위기까지 어느 것 하나 걸리지 않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우리 뭐 하고 있지? 왜 이렇게 된 걸까?” 2030 또래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저금리에서 살아남아라’(제1320호)는 그런, 기사와 1인칭 관찰기 사이 어디쯤의 글로 구상했습니다. 좀더 주관적이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나, 너, 우리 이야기니까. 자산과 노동, 부와 임금의 멀어지는 거리가 우리 믿음에 영향을 끼치고, 또 그런 우리의 욕망과 불안이 모여 경제를 더 불균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사이 잠깐,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봤으면 했습니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책 <불황 10년>을 봅니다. “한국이 지나온 마케팅 사회의 최정점은 아마도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2006년)가 출간될 무렵이 아닐까 싶다.” B에게 얘기했던 소설 이름이 나와서 이상한 우연이네 싶습니다. 경제학자는 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사들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걱정 없이 믿었던 2000년대 중반의 낙관적인 분위기를 그 소설로 짚습니다. 성장을 믿고 꽤 달콤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 물론 그런 시절은 지나가버렸습니다. 부채를 낀 채 부를 소유하고 있어도 불안한, 그마저 없다면 더 불안한 2020년의 씁쓸한 도시에서, “나이브(순진)했던 그때 우리”를 B와 생각하는 일이 문득 서글픕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0% 꿈과 절망, 밀레니얼의 저금리 생존기’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89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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