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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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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어떻게든 되것죠?

등록 2020-04-04 06:35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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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후루룩 쩝쩝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20개가 넘는 테이블 중 달랑 한 상. 전주에서 만난 들깨요릿집 김 사장은 “어떻게든 되것죠”라며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개발한 들깨삼계탕이 1월 한겨울에도 꽤 팔려나갔다”며 웃고, “올여름에 대박 나면 이제 발 뻗고 살 만하겠다”며 웃고. 사장님의 교정기가 유난히 반짝거립니다.

“여름이면 괜찮겠지요잉.”

어차피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안다는 듯, 인터뷰 말미에 “건물주인도 임대료를 20%나 깎아줬는데 어떻게든 되것죠”라며 또 웃습니다. “버텨보겠다”고 합니다. 자리를 옮겨 만난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십수 년 동안 대학 학비와 부모님의 생활비를 해결하던 시간제 일자리를 그만둔 30대 청년도, 그를 그만두게 한 업주도, 남은 동료도, “코로나19가 오기 전, 딱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잘 있어달라’는 바람을 각자에게 전합니다.

김 사장처럼 어떻게든 될 거라는 체념의 말을 희망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잘 버텨 다시 만나자는 사람들을 위해 전주시는 ‘긴급생활안정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52만7158원(중위소득 기준 80%, 5만 명 대상)을 지급합니다.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이다” “진정한 기본소득이 아니다” 등 비판은 매섭습니다. 김승수 시장을 비롯한 시 관계자들은 좌고우면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스스로 어려운 처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받아야 할 돈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부족한 나머지는 중앙정부에서 채웠으면 한다는 말을 더합니다. 전주시는 4월 안에 기본소득 지급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3월30일 정부는 소득 하위 70% 가구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씩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주시 관계자에게 다시 전화를 돌렸습니다. “4월 중 지급될 개인별 전주형 기본소득에 5월 지급될 가구별 100만원을 더하면 시민들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한다. 반갑다”고 했습니다. 걱정도 보탭니다. “60만 명에서 중위소득 80%를 걸러내는 것은 직접 해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 국민 소득을 따져 70%로 잘라내는 게 5월 지급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럴 바에야 이름이 어떻든 간에 정부는 원래 의미의 기본소득처럼 지급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줘야겠다면 편 가르지 말고 차라리 다 주자’는 박형준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말이 바뀌기 전에 그리하자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웃습니다.

전화를 끊고 코로나19 공포에서 벗어나 들깨삼계탕을 먹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를 떠올렸습니다. 돌이켜보니 ‘코로나 시대의 사랑’(제1306호 표지이야기)을 위해 찾은 전주는 봄꽃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올여름 삼복더위에 다시 찾아 들깨삼계탕을 먹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 사장님, 그때까지, 어떻게든, 잘 버티시길.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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