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알려졌죠. 서울에서 차로 1시간∼1시간30분 걸립니다. 이제 지하철로도 갈 수 있습니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개발의 광풍을 피해간 그곳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통시장 오일장도 여전히 열립니다. 제 고향입니다. 나고 자란 곳.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것 말고 제가 기억하는 고향은 좀 다른 모습입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물안개 그리고 대포 소리입니다. 강을 끼고 있는 곳이라 물안개가 자주 깔립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낀 물안개. 어릴 적 그 물안개는 공포였습니다. 그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야 물안개를 물안개 자체로만 보고 그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자주 들었던 소리는 ‘쾅쾅쾅’ 대포 소리. 군부대가 있는 곳이라 군인들이 포격 훈련을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아마도 나고 자란 이들이 아는 그 지역의 이야기가 있는 듯합니다.
살기 좋은 전원도시로 손꼽히는 그곳이 저에게는 언젠가 떠날 곳, 떠나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 마시는 공기에 대해 몰랐고 마주치는 사람들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어른들도 “공부 열심히 해 큰물에서 놀아야지”라고 했죠. ‘큰물’은 서울이었습니다. 지역에, 고향에 남는 건 뒤처진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 같아요. 2020년 연중기획 ‘지역에서 변화를 꿈꾸는 청년들’을 취재하며 만난 청년들 역시 불편한 시선을 토로했습니다. 지역에 남는 사람들, 지역으로 내려간 사람들을 패배자, 낙오된 사람으로 본다고요.
지역에 있는 청년들은 또 말합니다. 지역에서 문화공간을 만드는 임주아 시인은 문화 기반이 열악한 지역에서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고요. 서울 중심 이야기 속에 자신들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합니다. 로컬의 콘텐츠, 로컬의 가치를 발견하고 빛내는 그들. 수는 적다지만 한명 한명의 이야기는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지역에 내려가 새 삶을 꾸리는 청년을 재작년에도 만났습니다. 전남 목포에 내려갔습니다. 청년들이 만든 ‘괜찮아 마을’. 연고지가 없는 그곳에 온 그들을 보며 청년들이 지역을 떠난다고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신물이 나고 경쟁에 치인 그들은 지역에서 나를 찾고 우리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서울 밖이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서울 밖에 서 있어야 잘 보이는 지역의 청년들. 그 청년들 이야기를 ‘지역에서 변화를 꿈꾸는 청년들’ 17쪽에 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연결, 공유, 지속가능성, 같이의 가치를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역으로 갑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지역, 만나지 못한 청년들을 만나러 갑니다. 2020년 연중기획 ‘지역에서 변화를 꿈꾸는 청년들’은 계속됩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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