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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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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1일 23시59분59초가 넘어가는 순간

등록 2019-12-30 04:45 수정 2020-05-07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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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 12월31일 자정을 더는 신비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기가 되는 찰나의 순간 같은 것, 미신이라고 웃어넘기는 게 속 편합니다. 12월31일이 1월1일로 넘어가면? 그저 다시 출근이지, 뭐. 1년에 다만 1초라도, 특별한 시간에 대한 경외감 따위 잊은 채 심드렁하게 세밑을 보내게 된 건, 호들갑 떨어봐야 뭐 하나 바뀌지 않는 세상과 나 자신에 자주 실망한 탓입니다. 그래도 어릴 땐 섣달그믐 자정 전에 잠들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말에 또랑또랑 뜬눈으로 버티기도 하고 그랬는데 말이죠.(섣달그믐이 구정 전날이란 것을 알게 된 건 철든 이후입니다.)

제1293호에는 분홍색 ‘2019년 송년호’ 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모든 기자가 힘 합쳐 지난 1년을 되짚었습니다. <한겨레21>과 만나기로 결심한 찰나가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됐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겨레21>을 통해 #오빠미투를 한 A는 “진실은 통하고, 사람은 선하며,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실은 더 많은 삶이 기사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정하송씨는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D공고 졸업생 봉주는 일하느라 숨가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별일 없어요.” 간간이 “그래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들이 힘없이 덧붙었습니다. 내준 용기만큼 변하지 못한 세상이 우리 탓인 것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송년호에 여러 의미를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2019년 <한겨레21>이 던진 고민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그 고민이 우리 사회 진보를 향한 최전선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써냈던 단어와 문장이 무언가 바꿔냈던 순간과 여지없이 실패했던 순간을 솔직히 기록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어제와 오늘 사이, 올해와 내년 사이 굵은 선 하나를 긋고 싶었습니다.

‘아 몰라, 이 선에서 잠깐 멈출래’ 고개 젓고, 선을 넘은 뒤 ‘지금부터 제대로 다시 시작할 거야’ 불끈 쥘 수 있는 어떤 찰나. 그 순간이 지난 송년호와 이번 신년호 사이 어디쯤 있었으면 했습니다. 좀 유치해 보일지 몰라도 그런 시간의 단절이 절실했던, 그러나 2019년 한 해 내내 세상에 치이고 정신없이 싸우느라 잠깐도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의 자리를 묻는 질문과 혼란 속에 2019년을 보낸 <한겨레21>도 그랬습니다. ‘잠깐 끊고 생각한다. 다시 시작한다.’ 기사들 정리하고 읽는 내내 되뇌었습니다.

째깍. 12월31일 23시59분59초가 1월1일 0시0분0초로 넘어가는 순간. 올해만은 깬 채로, 스마트폰 켜지 않고, 시상식 시청도 잠깐 멈춘 채, 톡 하고 부러지는 시간의 단절을 오롯이 느끼기로 작심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지금부터 다시 제대로 시작할 거야’ 다짐할 겁니다.(남들 안 보는 데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통과 고민 안기는 크고 작은 일상과 세상은 2020년에도 변함없겠지만, 그러고 나면 때로 혼란하고 때로 무서웠던 세상에 다시 발 담글 용기가 조금은 생길 것 같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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