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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프락치’ 폭로 잘한 거겠죠?”
‘김 대표’(가명)는 불안합니다. 미래를 확신하기 힘듭니다. 국가정보원의 프락치였다는 폭로를 한 뒤 더 심해진 안면마비는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국정원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터뷰 중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고개를 돌려 한참을 응시합니다. 얼마 전 거처를 옮겼지만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립이 깊고 길어집니다.
불안의 뒷면에 뜻밖의 결기도 보입니다. 김 대표를 만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말하는 프락치 공작의 생생함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기억을 쏟아내고 말겠다는 그의 태도였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어머니의 사고, 아내와의 불화 등 언뜻 공작과 무관한 듯한 개인사를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그 끝에 국정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국정원의 회유에 넘어가는 나약한 자신이 있습니다. 동료들을 지하혁명조직 일원으로 거짓 진술하고 건네받은 몇십만원의 돈을 보면서 그 비루함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때로 접대를 받았다는 대목에선 자기혐오의 말이 가득했습니다. 남김없이 말하는 것만이, 자신 때문에 사찰 대상이 된 동료와 선후배들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연락이 끊긴 동료들에 대한 미련도 있어 보였습니다. 김 대표가 5년 내내 프락치 활동만을 위해 옛 친구들을 만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라는 역사적 대의를 거슬러 올라가 김 대표 개인을 미끼 삼아 지하혁명조직 사건을 기획했습니다. 2013년 국정원이 수사한 통합진보당 내 ‘아르오(RO)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6년 만에 불쑥 등장한 국정원이 RO 위에서 그들을 지도하는 조직이 암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다면 세상은 또 한 번 떠들썩했을까요. 국정원은 개혁의 칼날을 피해 조직의 존재증명을 할 수 있었을까요. 김 대표는 을 포함해 이번 사건을 보도했던 언론이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뭔가 조금은 바뀌어야 할 텐데,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해합니다. 검찰이 나섰지만 이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김 대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생계가 막막합니다. 기자와 인터뷰한 12월9일, 과외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저녁에 만날 학부모나 학생이 자기를 알아볼까 걱정입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당장 보낼 양육비가 밀려 있습니다. 다섯 살 난 아이가 눈에 밟힙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기자에게 묻습니다. 답을 바라는 건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 한숨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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