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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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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고 싶은 바람

등록 2019-07-30 12:04 수정 2020-05-03 04:29

“암환자들이 병이 나으면 뭘 가장 하고 싶은지 아세요?”

‘암 이후의 삶’을 취재하면서 만난 40대 암 경험자 한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분이 말해주길,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일상이란 아주 소소한 겁니다. 거리를 걷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 것. 일반인들이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 그에게는 너무나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삶입니다. 다시 가족에게로, 친구에게로, 일터로, 사회로 돌아가고 싶었다고요.

그렇지만 그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암 수술과 항암 후유증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분도 있습니다. 치료를 받으며 체력이 떨어져 쉽게 고단해진다고 합니다. 집에서 밥해 먹는 것조차힘겨운 이들도 있습니다. “몸이라도 회복해야 일이든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한숨 짓는 분도 있었습니다. 가사와 육아 도우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암 경험자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완치돼도 암이 재발할까 두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 감정을 평생 잘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20~40대 암 경험자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다시 일하는 게 힘겹다고 했습니다. 잦은 야근에 병원에 가느라 휴가를 쓰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주철씨는 암 진단을 받고 일주일 만에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투병으로 경력이 단절돼 재취업하기도 어렵습니다.

“암 경험자는 예전처럼 일할 수 없다” “일하면 재발한다” 같은 오해도 일하려는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고 합니다. 암 치료를 할 때는 죽음이 두려웠지만, 살아난 뒤에는 사는 게 두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아무것도 못하고 집순이로 있다는 이경숙(가명)씨는 자기가 이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자존감까지 무너지게 됩니다. 살아났지만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것처럼.

반대로 일상으로 잘 복귀한 분들을 보면 그분들 곁에는 지지자가 있었습니다. 박피디와 황배우는 서로에게, 또봄의 회원분들은 서로에게 힘이 돼줬습니다. 다시 돌아간 직장에서 동료들의 배려로 직장 생활을 안정적으로 해나가는 분도 계십니다. 사회적 지지는 그들의 시작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암 경험자 송민서씨가 부탁합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는 “암 유발자” “암 걸리겠다”를 너무 쉽게 내뱉지 말기를. 암을 경험한 그들에게는 이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고 합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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