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창간호 기사 중 지금 봐도 낯설지 않은 기사가 있다. “노조가 더 싸게 먹힌다”는 제목으로 ‘삼성 무노조 전략의 허실’을 짚은 채창균 한국사회연구소 연구원의 글이다. “‘상대적 고임금’과 ‘노조 불인정’으로 특징 지어지는 삼성 노무관리 전략은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쓰고 있다”고 논증한다. 자본 입장에서도 비효율적인 탓에 “가까운 장래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강요받게 될 가능성은 높다”고 전망했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노조 불인정은 범죄 수준으로 최근까지 지속됐다.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여온 노조 파괴 공작은 검찰 수사로 일부 드러나 30여 명이 재판에 부쳐졌다. 그룹 옛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문건(2013년)은 노조를 ‘악성 바이러스 침투’로 규정하고, 그룹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그룹 고유의 비노조 전통이 항구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부탁”했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의 포기를 강요받지만, 80년 동안 불허된 노조의 설립 움직임은 미약하다. 무노조는 초일류 기업 삼성에서 일하다 병을 얻는 노동자를 더욱 많게, 더욱 아프게 해왔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려 1월29일 세상을 떠난 삼성SDI 선임연구원 황아무개(32)씨를 떠올리며 무노조 얘기를 꺼냈다. “노동조합이 없어 현장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으니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황유미씨에서 시작된 11년이란 긴 싸움에 ‘쉼표’를 찍었다. ‘반올림 시즌1’이다. 합의 이후 반올림에 들어온 산업재해 제보는 220건에 이른다. 시즌2의 시작이다. 노조가 있었다면 희생을 줄이고, 보상을 더 빨리 매듭지었을지 모른다. 시즌2를 알리면서 삼성의 무노조 전략을 떠올리는 이유다.
부디 ‘반올림 시즌2’가 빨리 끝나길, 시즌3는 없길….
만리재에서 2“지금 어느 정도의 우여곡절은 있지만 한반도의 냉전 종식을 가로막아온 북한 핵문제가 머지않아서 해결될 것 같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많은 문제가 잇따라 진전을 보일 것이다… 다행히 지금 북-미 핵 회담은 그러한 방향으로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94년 3월 창간호 특별기고 일부다.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전에 해결을 고대했지만, 그의 아들도 죽고 이제 손자가 북한을 이끈다. 김 전 대통령의 바람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못했다. 8개월 만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다시 만난 북미 정상은 빈손으로 헤어졌다. 북핵 해결은 또다시 유보됐다.
허탈하겠지만 25년 전을 떠올려보자. 북한의 준전시 상태 선포,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대북결의안 채택, 핵사찰 수용 발표란 롤러코스터를 탄 한반도 정세는 서울 불바다 발언, 정전협정 무효와 군사정전위원회 탈퇴, 미국의 대북 공격 검토로 위험천만하게 정점으로 치달았다.
지금은 어떤가. 지난해 사상 첫 북미 정상의 만남은 올해도 다시 이어졌다. 그새 남북 정상은 세 번이나 만났다. 이제 북미 종전선언은 시간문제일 뿐 현실로 그려진다. 지난 10년 오지 않았던 한반도의 봄이다. “남북문제를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김대중)는 철학과 자세를 지금 정부가 갖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로 사그라든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그러다보면 꽃도 곧 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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