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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기적

등록 2017-12-26 15:04 수정 2020-05-03 04:28

2015년 말 방영돼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의 배경은 ‘올림픽의 해’였던 1988년입니다. 드라마에서 서울올림픽은 개막식 피켓 걸로 활동했던 주인공 덕선이를 둘러싼 에피소드(1화)로 언뜻 소비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올림픽은 197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를 사실상 결정지었다 해도 될 만큼 우리 사회에 너무나 큰 여파를 남겼습니다.

얼마 전 고 손정목 서울시립대 교수의 저서 5권을 훑어보다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경기장 및 선수·임원 숙박시설 등 여러 가지 사전준비를 할 만한 방도가 없어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1970년 제6회 아시안게임을 반납해버린 것은 국제적 망신이었다. 한국의 반납으로 1966년 제5회 대회에 이어 6회 대회까지 치르게 된 타이 방콕시에 한국 정부는 25만달러라는 벌과금적 부담금을 지불했다.”

이 소동은 박정희 대통령의 자존심에 참기 힘든 큰 상처를 남긴 모양입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1971년 6월 당시만 해도 한강의 섬이었던 잠실 주변을 매립해 만든 공유수면매립지구 100만 평 토지를 중심으로, 그 일대 340만 평의 너른 토지를 개발하는 잠실지구 구획정리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3년 9월 하순 박 대통령은 “잠실구획정리지구 340만 평을 계획적 수법으로 멋지게 개발하라. 그리고 그 한구석에 국제 규모의 체육장 시설을 만들 것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 결과가 1977년 11월28일 완공된 올림픽 주경기장과 수영장입니다. 이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으로 대통령 경호실장에서 물러난 박종규는 1979년 2월15일 제25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한 뒤 1979년 10월8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내외신기자회견에 임합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1988년 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당돌한’ 기자회견이 있은 지 채 한 달이 못된 10월26일, 박정희 독재는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뒤 들어선 전두환의 신군부는 ‘미션 임파서블’이라 여겨졌던 올림픽 개최라는 도전을 이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우리가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 적어도 그것이 끝날 때까지는 북의 침공은 있을 수 없다’는 ‘대북 견제론’과 ‘3S’라는 우민화 정책으로 자기 손에 묻은 ‘광주의 피’가 잊히길 바라는 속셈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개최가 결정된 서울올림픽은 이후 독자적인 생명력을 이어갑니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87년 6월 항쟁 국면이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6월 항쟁을 진압하려고 군 동원을 고려했다가, 그랬다간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없을 것이란 주변의 만류로 이를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김성익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2007년 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이 잘못되면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가 나빠지고 북에게 지는 것이며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곧 평창겨울올림픽이 시작됩니다. 이 올림픽은 한국 현대사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88올림픽을 치를 때만큼의 설렘과 환희를 발견하긴 어렵습니다.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부어 지은 경기 시설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큰 걱정입니다. 남은 기대라면, 북핵 문제로 꼬인 실타래 같은 동아시아 정세에 평창이 뭔가 생산적인 기여를 해주길 바라는 것뿐입니다. 이제 시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평창겨울올림픽은 평화의 올림픽으로 기억될까요? 그런 마음을 담아 이번호는 평창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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