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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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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와 쓰치야

등록 2017-07-18 16:03 수정 2020-05-03 04:28

“나도 모르게 깜빡 졸까봐 맨정신일 때도 껌 씹고 허벅지 꼬집어가며 운전한다.”

이번주(7월9~14일)의 사건·사고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것은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고속버스 졸음운전 참사였습니다. 서울과 경기도 오산 사이 광역버스 노선을 운행하는 오산교통의 운전기사 김아무개(51)씨는 7월9일 졸음운전으로 7중 추돌 사고를 일으킵니다. 이 사고로 앞 승용차에 탄 신아무개(59)씨와 그의 아내가 현장에서 숨졌고, 버스 승객 15명이 다쳤습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과로로 운전하던 중 깜빡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7월12일치 13면에는 이 사고를 일으킨 운전기사 김씨의 긴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그는 “전날 18시간 정도 근무하고 나서 새벽 1시쯤 잠에 들었다. 사고 당일엔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15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두 차례 왕복을 끝내고 낮 12시45분쯤 차고지에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조금 쉬다가 오후 1시15분부터 다시 운전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씨와 동료들의 얘길 모아보면, 김씨 등은 이틀 연속 하루 16시간 운전한 뒤에야 하루 쉴 수 있었고, 그 대가로 세금을 제외하고 한 달에 275만원 정도 월급을 받았습니다. 하루에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버스 기사들의 노동강도가 이렇게 높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고가 터진 뒤 국토교통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객운수 사업장의 전면 실태 조사에 나서고 영세 버스업체들이 운전자 노동조건을 제대로 지키는지 등을 집중 확인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그동안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해 대형차량 운전자가 4시간 연속 운전하면 최소 30분 휴식하게 하는 의무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우리나라 버스업계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2016년 1월 대형버스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와세다대학 학생 등 39명의 젊은이를 태운 고속버스가 나가노현 가루이자와 부근 18번 국도에서 내리막길을 과속으로 달리다 비탈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스키 여행을 가려던 젊은이 1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참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집요한 취재를 벌입니다. 그 성과 가운데 하나가 사고로부터 석 달이 지난 2016년 4월30일 [NHK스페셜]을 통해 방송된 ‘그리고, 버스는 폭주했다’입니다.

일본에서 전세버스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된 것은 2000년입니다. 이 조처로 전세버스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연식 5년 이내의 버스 7대’에서 ‘버스 3대’로 대폭 완화됩니다. 그러다보니 업계는 5천 개 가까운 영세업체가 난립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다소 혜택을 봅니다. 전세버스로 도쿄 근처 스키장에서 1박 하고 돌아오는 여행의 가격이 1만엔대 초반까지 떨어지니까요.

문제는 숙련된 버스 기사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참사를 일으킨 운전사 쓰치야 히로시(65)는 대형버스 운전에 미숙했습니다. 버스회사는 쓰치야에게 제대로 연수도 시키지 않고 ‘업계 최저가’ 싸구려 스키 여행의 운전사로 배치합니다.

숨진 쓰치야의 주검에서 발견된 유품은 그날 일당으로 받은 돈 1만678엔이었습니다. 그의 유골은 지금도 찾아가는 이 없이 도쿄의 한 공양당에 방치돼 있다 합니다.

김씨의 한국과 쓰치야의 일본.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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