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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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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픽션

등록 2016-07-26 15:18 수정 2020-05-03 04:28

질투는 힘이다. 예컨대, 그저 글을 많이 읽는다고 잘 쓰게 되는 게 아니다. “이런 글을 쓰고 싶어! 나한테도 능력이 있다고!” 이런 시기·질투를 느껴야 결국 좋은 글을 쓴다.

이 여름, 를 시기·질투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성매매 의혹에 대한 그들의 보도는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사실 검증 보도의 역작이다. 이 영상은 진본인가, 이 아파트는 어디에 있는가, 그 소유주는 누구인가 등의 질문 앞에서 그들은 한땀한땀 사실을 검증해 교직했다.

사실 보도는 언론의 기본 소명이다. 최종 목표는 진실 추구다. 판단의 근거가 되는 사실을 풍부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공중은 올바른 논쟁을 거쳐 진실을 찾아낸다. 이 대목에서 과학자들은 반증 가능성의 원리를 적용한다. 쉽게 말해, 이것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검토하는 방법이다. 사실이 아니라는 반증의 도전을 물리친 것이라야 비로소 사실이다. 이런 과학의 태도를 언론에 옮긴 것이 사실성·객관성 등의 규준이다.

다만 의 이번 보도에 시기·질투의 마음으로 굳이 딴죽 걸자면, 1% 부족한 바가 있다. 대중은 잘못의 귀책을 특정 개인에게 몰아넣는 뉴스를 매우 좋아한다. 선악 구도로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중대 사안 대부분은 ‘한 사람의 악마’에 의해 자행되지 않는다. 때로는 나 자신이 그 악마성에 개입돼 있기도 하다. 사실 검증은 복잡한 사안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이지만, 언론은 종종 이를 포기하고, 힘겹게 성공한다 해도 복잡한 검증 과정을 따라 읽지 못한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이것은 현대 언론이 처한 딜레마다.

언론학자 허버트 갠즈는 공공, 사실, 대중을 함께 획득할 대안의 하나로 뉴스 이슈를 소설로 쓰는 ‘뉴스 픽션’을 제안했다. 복잡한 사실을 충분히 검증하되 허구의 스토리라인을 덧붙이는 게 핵심이다. 이는 “어떤 종류의 뉴스 미디어에도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뉴스 사건을 전해주는 동시에 비로소 그 사안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방편이다.

꼭 어울리는 사례는 아니지만 전례도 있다. 존 스타인벡은 에 캘리포니아 이주 농민에 대한 르포 기사를 게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소설 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탐사기자이자 소설가였다. 이제 1930년대 대공황기 빈농의 고통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은 그의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사실을 포기하고 미사여구로 치장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취재·보도에 혁신을 가할 새로운 뉴스 포맷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이번호에선 ‘사드’가 불러올 1년 뒤를 그린 ‘뉴스 픽션’을 실었다. 경북 성주군민들만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의 머리 위로 미사일과 핵무기가 날아다닐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가는 기막힌 현실을 스토리라인에 얹어보았다. 불지옥을 미리 감상해주시기 바란다. 그 미래 앞에 침묵하면 우리 모두 악마다.

물론 사드를 둘러싼 사실 검증 보도는 계속된다. 앞서 적은 대로 “이런 기사, 우리도 쓸 수 있다”고 시기·질투하는 한, 도 사실 검증의 전형이 되는 역사적 기사를 내놓게 될 것이다.

추신: 다음주에 발행될 제1123호는 2주치를 한번에 묶은 ‘여름 합본호’로 발행될 예정이다. 그 이유와 내용은 다음주 이 지면에서 상세히 소개하겠다.
참고 문헌: , 허버트 갠즈 지음, 남재일 옮김, 도서출판 강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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