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덩굴장미의 방식으로 산다. 남들이 눈 돌리는 햇볕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떼로 몰려다닌다. 가냘픈 가시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뭇 사람들이 주목해주길 기대한다. 그런데 진짜 아름다운 봉오리는 덩굴 가운데 하나 또는 둘이다. 그 한 송이가 바로 나 아닐까, 평생 착각한다.
젊음의 모양새가 아직 장미에 가까웠던 1997년 11월, 사내 연수 중이던 한겨레신문사 입사 동기들과 함께 치악산에 올랐다. 겨울바람이 투명했다. 스물여섯 살의 또래가 모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이원재는 나중에 기자를 그만두고 현재 희망제작소 소장을 맡고 있다. 옆에서 웃던 나는 아직 때려치우지 못하고 이 글을 쓴다.
그날 이후 인생은 줄창 내리막길이었다. 웃는 날은 희귀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질문이 꼬리를 물다가 파도를 이뤘다. 매 순간 휘청거렸다. 막강한 세상을 상대할 지성이 부족했고, 그걸 버티어낼 감성도 취약했다. 몇몇 질문은 문신처럼 들러붙어 오늘에 이른다.
예컨대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왜 한국 기자의 역할 모델은 칼럼니스트 또는 논객인가. 기자의 진짜 임무는 보도인가 논평인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는 게 기사인가. 그렇다면 왜 ‘야마’(핵심)부터 잡아야 하는가. 사실이 기사 프레임을 결정하는가, 프레임이 사실을 재구성하는가. 기자는 시민에게 충성하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왜 수익은 기업 광고로부터 얻는가.
언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덜컥 뽑아주는 ‘공채 제도’ 덕분에 나는 기자가 됐다. 그로 인해 지난 17년여 동안,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분노의 실체를 파악해 해소하려고, 글이건 말이건 갈급하게 들여다보고 캐보았다.
유럽식 정치(정파) 언론 모델과 영미식 객관주의 언론 모델이 괴상하게 뒤엉킨 결과, 사실을 중시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의견을 높게 평가하는 풍토가 조성됐다는 것. 주관을 배제한 객관의 파악은 애초 불가능한데도 객관 보도라 주장하는 의례를 펼칠 뿐이라는 것. 그래도 여러 주관을 거치는 집합적 검증을 통해 최대치의 진실에 가닿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 뉴스 소비자에게 합당한 대가의 지불을 요구할 정도로 한국 언론이 시민을 의식하며 취재·보도 행위를 한 적이 드물다는 것 등을 알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한 깨달음이 있다. 한국의 기자 거의 전부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덩굴에 매달려 있다.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 교수 등의 자질에 매일 시비 거는 기자들이야말로 우스꽝스런 방식으로 간택되어 허황된 방식으로 훈육되고 있다. 그것이 한국 언론의 여러 문제를 결정하고, 그 언론이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초래했다.
개량종인 나무장미와 달리 원형질로서 덩굴장미의 쓰임새는 보호, 방어, 경비에 있다. 무엇을 지키고 보호할 것인지, 무엇에 기대어 무성해질 것인지 갈피를 못 잡아 시들어가는 덩굴장미는 한국 기자들의 처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겨레신문사가 신입 기자 채용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올겨울까지 이어질 ‘언론사 공채 시즌’을 맞이하여 기자 채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기획을 주도한 김효실 기자는 언론학을 공부했다. 미디어 담당 기자를 거쳐 디지털 주무 기자로 변신 중이다. 우리 뉴스룸의 막내인 그는 얼마 전 서른이 됐다. 그 청춘이 다가기 전에 21세기형 기자로 거듭나길 응원하고 도우려 한다. 허물어져가는 덩굴장미 가운데 그는 마지막 남은 봉오리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추신: 좋은 기자의 탄생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인턴기자 제도의 변신과 함께 ‘(가칭) 21 저널리즘스쿨’을 준비하고 있다. 그 대체적 내용은 47쪽에 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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