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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4일 이후에도 함께 사는 법

‘윤석열과 빌런들’의 파렴치와 호들갑과 부추김에도 버틴 국민…응징은 선고로, 공존은 선거로
등록 2025-04-05 10:21 수정 2025-04-06 14:02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오른쪽)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4월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오른쪽)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4월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간첩들이 없는 곳이 없다 카드라.” 엄청난 고집을 자랑하면서도 어울리는 사람을 따라 쓰는 단어와 표현이 바뀌는 내 엄마는 요새 유튜브에 빠진 친구와 가끔 만난다. 그분의 알고리즘이 더 고약해진 모양이다. 천동설 수준의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인종 혐오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데 이날은 하필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일이 발표되기 직전,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던 때였다. “엄마, 그 주장대로면 나도 간첩이야.” 눈이 휘둥그레진 엄마가 입을 닫았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틋한 모녀 애순과 금명이라도 이 시국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넉 달 동안 평화와 안정을 도둑맞았다. 나쁜 것 위에 나쁜 것, 그 위에 더 나쁜 것이 보태어졌다. 우리의 사회·경제적 기반은 일명 ‘도둑 정치’(클렙토크라시)를 허용할 수준이 아닌 줄 알았건만 윤석열과 그 하수인들은 비상계엄이라는 엄청난 짓을 벌이고도 파렴치하게 굴었다. 법과 제도를 비웃고 규범과 상식을 파괴했다. ‘도둑 정치 주역들’은 사익과 권력을 탐하면서도 사회·경제적 문제는 나 몰라라 하다 정작 위기 앞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인다는데, ‘막장의 대행들’을 비롯해 ‘법꾸라지 법비들’이 딱 그 꼴이었다. 나라 경제는 물론이고 행정, 사법 체계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 같았다.

상실감에 슬펐고, 무책임에 분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그 와중에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돈을 버는 미국 국채를 샀댄다. 나라는 망해가는데 경제 수장이 제 배만 불리려 한 셈이다. 국민 밉상이 되기로 맘먹었나보다.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라는 판결이 두 차례나 나왔음에도 모르쇠 하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의 처신은 “형사처벌 될 것이고 영원히 오명을 남길 것”이라는 조갑제 옹의 말로 갈음한다. 오늘날 ‘연성 독재’는 한 명의 빌런이 아니라 빌런들의 네트워크로 운영되는 게 확실하다.

그 ‘네트워크’가 난데없는 윤석열 석방을 끌어냈다. 플랜 B, C, D를 마련하고 있다던 야당은 휘청 발이 꼬였다. 국민의 공포와 불안을 달래지 못했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여당은 야당 지도자를 비난하는 것으로만 면피하려 했다. 한술 더 떠 폭력 선동과 가짜뉴스를 이용하다 못해 부추기고, 주거니 받거니 호들갑 떨었다. 훗날 역사가들은 윤석열의 난을 기록하며 여당 인사들의 이런 행태를 야설로라도 깨알같이 담을 듯하다. 윤석열 파면이 임박한 와중에도 국민에게 사과는커녕 승복 선언을 하라고 야당만 들볶았다. 그런들 국민이 못 받아들이면 무슨 소용인가. 그나마 거짓 선동과 거리를 둬온 여당 대선 주자들조차 제 몫을 못했다. 비겁하고 무능했다. 한동훈은 입을 닫았고 유승민은 신경질을 냈으며 안철수는 횡설수설했다.

정말 국민 노릇 하기 힘들다. 더 힘든 건 이 모든 걸 초래한 윤석열은 물론 그 지지자들과 계속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못할 것도 없으려나.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좋은 것 위에 좋은 것, 그 위에 더 좋은 것을 쌓아온 덕에 탄핵 심판이 늦어진 아주 더 나쁜 상황을 버티었는지 모르겠다. 그 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들과 옳고 그름을 분별한 군경과 온 국민 복장 터지기 전에나마 날을 잡고 판결을 한 헌법재판관들까지. 2025년 4월4일 이후에도 좋은 것들을 쌓아가자. 윤석열 응징은 형사 법정에서도 이어진다. 간첩 운운하는 내 엄마는 선거 결과만큼은 받아들인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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