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 국회 방송 보다 눈물 나긴 처음이네. 조국 그렇게 욕했는데 조국에게 위로받았어.”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수발 노동에 치여 사는 한 친구가 비번 날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들었다고 한다. 하필 살고 있는 낡은 빌라의 배수관이 말썽을 일으켜 무더위에 진을 뺀 직후였기에, 주거권과 돌봄권을 역설하는 그의 연설 내용에 제 처지가 제대로 겹쳤다고. “우리 모두는 누구나 아프고 다치고 나이 든다.” “우리 국민은 주거와 돌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자격이 있다.” 책임 있고 절제된 국가 권력을 말하는 조국이 자기만큼이나 간절해 보였단다.
요즘 조 대표는 ‘광폭 행보’ 중이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전남~서울~부산을 옆동네 오가듯 넘나들었다. 이동 거리만 5천㎞가 넘는다. 그는 10월16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조국혁신당이 후보를 낸 전남 곡성, 영광과 부산 금정에 달방을 얻었다. 막걸리 얻어 마시고 이발소에서 머리 다듬고 황톳길 맨발로 걷는 모습이 각종 매체에 소개됐다. 특히 곡성에서 몸뻬 차림으로 토란을 수확하는 모습은 “폼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여기저기 퍼졌다. 마침 그 지역에서 농민운동을 오래 한 박웅두 예비후보와 함께였던지라 ‘정치적 폼’으로도 하이라이트가 됐다. 추석 전날 밤 내보낸 라이브 방송에서 문재인 정권 초기 청와대 인사들과 커피 들고 산책하던 장면이 소환되자 조 대표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고 말했다. 정치인 조국의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저는 흠결이 있는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국회 연설에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했다. 먼 길이었다. 그가 일관되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지만 그를 친 칼이 몹시 나쁜 칼이라는 걸 모두가 알아버려서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권이 이 지경으로 못하지 않았다면, 공권력을 남용하지 않았다면, 뻔뻔하지 않았다면, 조국을 향한 관심이 기대로 바뀌는 변곡점이 더 뒤에 왔거나 아예 안 왔을지 모르겠다. 니체의 말대로 그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까. 역설적이다.
그는 불리한 상황도 유리하게 만들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언제 어떻게 날지 모르는 탓에 ‘오늘만 사는’ 것 같다. 하루하루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가능한 한 쉽고 정확하게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한다. 누가 봐도 평생 ‘노잼’이었을 이가 웃기려고 애도 쓴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의제를 미루지 않는다. 당원과 지지자들도 그를 닮았다. 그악스럽게 엄호하지 않는다. 쥐고 흔들며 효능감을 얻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뭉근히 지켜본다. 이런 식의 단단하고 담담한 행보에 신뢰가 쌓여, 그와 그의 당 지지율은 조용히 상승세를 탔다.
조국혁신당은 재보선을 앞두고 전남 두 곳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경쟁을, 부산에서는 민주당과 협력을 제안한 상황이다. 명분을 갖췄다. 지난 총선에서 뿌리도 안 내린 채 엉겁결에 꽃을 피워낸 조국혁신당으로서는 차근차근 착근하여 사람과 세를 모을 계기로 삼을 만하다.
그에게는 “그럼 다음 대선에는…?”이란 질문이 따른다. 그는 자신과 당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손사래 치지만,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우호적인 세력은 자꾸 그를 중심에 놓고 그림을 그린다. 많은 이들이 현 정권을 이미 ‘심리적으로 탄핵’했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인들의 ‘역량’이 냉정하게 드러난다. 뒷심 있는 이와 없는 이의 차이가 도드라진다. 조국은 뒷심이 센 쪽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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