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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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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용산 당무특보’ 안 되려면

정책·비전 없이 당권 잡고 ‘쉬운 싸움’만 하려 드니
등록 2024-08-02 20:42 수정 2024-08-04 11:18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4년 7월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나와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4년 7월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나와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연정과 협치를 할 모양이다. 야당과 하는 게 아니라 둘이서만. 서로 약점을 쥐고 있단 걸 온 국민이 아는데, 겉으로는 별일 없다. 2024년 7월30일 두 사람이 만났다는 소식이 다음날 대통령실발로 자세히 나온 걸 보니, 이 관계에서 ‘자기 구원’을 얻으려는 이는 대통령인 듯하다. 당 인사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게 유독 강조됐다. 애초 ‘하명’이라도 내리려 했나.

한 대표는 이미 때를 놓쳤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당 정책위의장 인선 여부를 질질 끄는 바람에 대결 구도만 키웠다. 당선 직후 ‘원 오브 뎀’으로 용산에 가서 삼겹살과 쌈채소를 얻어먹고 온 뒤 전광석화처럼 해치웠어야 할 일이었다. 기껏 스스로 링에 올랐으나 싸울 줄은 모르는 건가, 의구심이 퍼진다.

정작 기습 인사를 감행한 이는 대통령이었다. 임기를 마친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문까지 걸어 잠그고 하루 만에 연임케 하더니, 법인카드 용처와 근무태도의 기준을 전복시킨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은 물론, 노동 단체뿐 아니라 해당 부처에서도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고 여길 법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지명에 이르기까지. 어쩜 이리 하나같이 해당 장르에서 극강의 빌런들만 골랐을까. 엠비시 사장도 갈아치우고 노조를 더 때려잡으면 다 잘될 것이라는 ‘계시’나 ‘환청’이라도 듣는 건가.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을 지배하는 건 더 이상 무지도 무능도 오만도 아닌, 공포 같다.

더불어민주당도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치르는 중인데 사람들은 도통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권이 대화나 타협을 하리란 기대가 난망한데 야당에 뭘 바랄 수 있을까. 그나마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칠 법한 여당을 눈여겨볼 수밖에. 변화를 내세워 대표가 된 한동훈은 무엇으로 그것을 증명해낼 것인가.

본인이 수차례 강조했던 제3자 특검 추천 내용을 담은 채 상병 특검법은 “하겠다”에서 “해야 한다”로 미묘하게 바뀌었다. 국민 마음을 얻겠다더니, 새삼 당내 절차를 앞세운다. 과연 의지가 있나. 그에 대한 답은 건너뛴 채, 돌연 ‘민주당 헐뜯기’에 나섰다. 그는 최근 군사 기밀을 중국 동포에게 넘긴 군무원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이유가 북한을 뜻하는 ‘적국’을 폭넓게 ‘외국’으로 바꾸려던 법 개정을 지난 국회에서 민주당이 하지 않아서라고 비난했다. 당대표가 된 직후 가장 주목도 높은 시점에 꺼내든 의제치고는 허무하고 뜬금없다. 용산과의 관계도 당 장악도 지지부진하니 공동의 적인 민주당을 소환하려는 얕은수인가. 민주당이 연상되면 자동으로 ‘탓하기 버튼’이라도 눌리는 건가. 그때 법무부 장관이던 당신은 그럼 뭘 했나, 질문은 이제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권여당의 대표인 당신은 그럼 뭘 할 건가.

우리는 한동훈의 비전과 철학, 정책을 들은 바 없다. 그가 말한 미래는 미국 아이비리그 졸업생 대표 연설처럼 추상어가 나열된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들렸다. 낙하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을 치렀으니, “죽기 딱 좋은 자리”라는 걸 알고도 당권에 도전했다니, 그간 많은 이들이 인내심을 갖고 그 말을 들어줬다. 더는 아니다.

청구서가 밀려올 것이다. 서사도 실적도 없이 미래를 담보로 당권을 잡았으니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자기 눈높이를 늦지 않게,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그는 용산 대통령실의 ‘당무특보’에 지나지 않는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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