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기는 거지? 그의 행보를 결코 좋게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주절주절 자기 타령 하며 ‘네가 나 좀 어떻게 해줘’ 유의 문자메시지를 ‘읽씹’ 해본 경험 때문일까. 반백 철학은 몰라도 반백 관계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처지에서 보자면, 상대가 정말 싫으면 그렇게 ‘씹게’ 된다. 형식적인 응대조차 안 한 건 진짜, 몹시, 싫은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에게 보낸 문자가, 공개된 다섯 통뿐일까. 안부를 빙자한 민원이나 걱정을 핑계 댄 청탁은 없었을까. 우리가 익히 아는, 인맥도 스케일도 광활한 여사의 스타일을 볼 때, 설마.
공개된 문자는 다분히 다른 이에게 보일 것도 고려하고 쓰인 듯하다. 극존칭도 그렇고 여사에게 유리한 내용만 담긴 것도 눈에 띈다. 진지한 의논일 수 있지만 책임 회피를 위한 보험일 수도 있다. 그게 몇 달 뒤 이런 식으로 공개돼 당대표를 뽑는 집권여당 전당대회를 ‘똥탕질’ 하게 될 걸 알았을까. 미리 내다보았다면 대단히 교활하고 정녕 그럴 줄 몰랐다면 아둔하기 짝이 없다. 문자를 둘러싼 진흙탕 속에서 한동훈이 여사를 무서워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보다 더욱 선명해진 건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을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세간의 짐작을 증명해버렸다.
본인의 거취와 관련해 정작 남편이자 통치권자인 대통령은 ‘패싱’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사과할지 말지, 그보다 더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왜 한동훈에게 결정해달라고 조른 걸까. 대통령이 아랫사람도 아닌데 왜 자신이 대신해서 사과하고 그런 대통령과 잘 지내라고 한동훈에게 부탁한 걸까. 다른 일로도 이렇게 두서없이 ‘치대온’ 것일까. 그랬는데도 지금껏 ‘카더라~’식 풍문만 나돈 정도였으니, 집권 전반기 대통령 부부의 권력이 세긴 센가보다. 주변 사람들이 유난히 공사 구별이 철저해서는 아니지 않겠나.
국민의힘에는 한동훈이 대표가 되지 않길 바라는 세력이 있다. 그들이 원희룡을 무대 위로 올렸다. 문자는 그 과정에서 공개됐다. 여사 차원에서 혹은 여권 차원에서 관리하는 댓글팀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조차 감추지 못할 정도로 돌출적이었다. 넘겨받고 돌려보고 저장해놨던 인사들이 수를 쓴 거겠지. 그게 당사자인 여사의 동의나 묵인 없이 이뤄질 수 있을까. 아니라면 한낱 유선 전화번호조차 국가기밀이라고 우기는 대통령실에서 왜 이 민감한 문자 공개에는 두 손 놓고 있을까. 그 흔한 ‘격노’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분히 ‘자해 공갈’에 가까운 문자 공개로 여사가 지키고 싶은 것, 혹은 숨기고 싶은 것이 역설적으로 드러나버렸다. 선을 넘은 자는 한계가 없다지. 한동훈이 지금껏 ‘유이하게’ 공개적으로 ‘넘은 선’은, 아니 ‘밟은 선’은, 정확히는 ‘살짝 닿은 선’은 여사의 명품백 수수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완곡한 비판과 채 상병 특검법 추진 가능성이다.
명품백 수수는 여사도 문자에서 잘못을 시인했듯 추한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다. 채 상병 특검법은 다르다. 외압과 은폐를 위해 정권 차원의 온갖 무리수가 동원됐다. 대체 왜 일개 사단장의 구명을 위해 대통령 이하 그 많은 이들이 난리 블루스를 췄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는데, 여사와 얽혀 있는 이의 통화 녹음이 공개되면서 중요한 퍼즐 하나가 맞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사 개입이 사실이라면 정권이 뿌리째 흔들릴 일이다. 이거였나. 한동훈이면 절대 안 될 이유가.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