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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특검법의 시간, 국민의 힘을 보여줘

‘금쪽이’ 대통령 막을 세력은 결국 여당 … 윤심 아닌 민심 따라야 ‘시계제로’ 상태 벗어날 것
등록 2024-05-04 09:16 수정 2024-05-05 08:36
2024년 4월29일 국회에서 윤상현 의원이 주최한 국민의힘 혁신 세미나가 열렸다. 연합뉴스

2024년 4월29일 국회에서 윤상현 의원이 주최한 국민의힘 혁신 세미나가 열렸다. 연합뉴스


바닥을 친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더라는 고전적인 표현 말고는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총선 참패보다 더 놀라운 것은 참패 뒤에도 아무런 수습 능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조용하기까지 하다. 대통령의 뜻임이 분명해 보이는 이철규 원내대표의 입성만, 경선 날짜를 미루어 가까스로 보류시켰을 뿐이다. 수도권 ‘생존자’인 윤상현 의원은 당의 이런 상황을 “공동묘지의 평화”라 자조했다.

한 꺼풀만 들추면 아비규환이다. 특히 지지자들의 마음은 갈가리 갈라져 있다. 총선에서 ‘망한 이유’도 제각각 풀이한다. 1.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셀카 정치’ 때문에 망했다. 2. 한동훈이 그나마 개인기로 버티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 때문에 망했다. 3. 정치 초보인 그 둘 때문에 망했다. 3의 외전이자 소수설로는 그 둘은 보수를 궤멸시키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하수인이었는데 보수가 ‘밸도 없이’ 그들에게 권력을 쥐여줘서 그렇다는 자업자득론도 있다.

영남당에 이어 노인당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지(자) 소멸 단계’에 접어든 탓에, 어떤 목소리도 버릴 수는 없다. 다 끌어안고 가다보니 총선 뒤 연 혁신 세미나에서 여전히 부정선거 주장이 나올 지경이다. 이런 판국에 당의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제대로 모이겠는가. 지난 20년 동안 정의당만 망한 게 아니다. 국민의힘도 망했다.

정책도 세력도 리더십도 실종이다. 지난 총선에서 김포를 서울로 편입시키겠다는 말 말고 여당인 국민의힘이 무엇을 하겠다고 했는지 통 기억나지 않는다. 이재명, 조국 심판 외에는 없었다. 민생 대책은 전무하다. 하다못해 벼랑 끝 멱살잡이 중인 정부와 의사 단체를 중재하는 시늉도 안 했다. 한동훈 지지자들은 화환을 줄지어 보내거나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식으로 이재명 팬덤과 같은 길을 갈 태세이나, 스피커 파워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다. 한동훈을 경험 없는 “얼라” 취급 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출력’에도 못 미친다. 리더십은 더욱 미궁이다. 당권의 향배는커녕 당심 100% 선거 방식을 바꾸느니 마느니부터 오리무중이다.

우리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깨닫는 데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뭐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금쪽이’ 대통령은 이제 우리 정치의 ‘기본값’이다. 그런 대통령을 바꿀 수 있는 건 강력한 야당이 아니다. 그런 대통령을 낳은 여당이다. 야당은 서로 핑계를 대주는 싸움에 그치기 쉽지만, 여당은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낼 공동책임이 있다.

대통령이라면 권력을 야권에 넘겨주느니 밉든 곱든 여권에 남겨주고 싶어 한다. 스스로 믿는 ‘국가의 미래’뿐 아니라 ‘자기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렇기에 어느 시점에서는 필히 여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건 권력이 ‘정상’으로 작동하고 권력자가 ‘정상’일 때의 얘기다. 그 모든 게 불분명한 지금, 국민의힘은 ‘시계 제로’ 상태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길 권한다. 넘어졌다면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총선 참패의 책임이 있는 이를 굳이 원내대표로 앉히려는 이유가 특검의 칼끝을 피해보려는 것 아니면 무엇이겠나. 대통령이 지키려는 게 나라일까. 당일까. 아니면 자신과 배우자일까. 우리 모두 이젠 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풀기 위한 특별검사법이 되돌아오면 압도적으로 통과시키는 게 지금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보여줘라. 국민의 힘.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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