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곧 반환점을 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 운영을 시작하며 처음부터 녹록지 않은 환경을 마주했던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24년 4월10일 제22대 총선에서 참패한 뒤다. 윤 대통령은 8월29일 열린 국정브리핑과 기자회견에서도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인식을 내보이며 정치권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임기의 절반 남짓을 보낸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론조사 흐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갤럽이 8월27~29일 전국 만 18살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3%로 취임 이후 두 번째로 낮았다. 리얼미터가 8월26~30일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에서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9.6%에 그쳐 역시 취임 뒤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크다는 의미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윤 대통령이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 시스템을 서서히 붕괴시켜왔다는 것이다. 특히 입법부인 국회를 지속적으로 무시해온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직면해 있다. 9월2일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윤 대통령이 불참한 것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특검,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먼저 정상화하고 초대하는 것이 맞는다”며 불참에 대한 책임을 야당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는 국회가 정치 양극화의 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윤 대통령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야당 대표를 ‘피의자’로 몰아붙이며 외면해왔다. 총선에서 참패한 직후인 4월20일 처음 마련한 영수회담에서도 기존 입장을 고집하며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여당에 대해서도 입맛에 맞지 않는 당대표를 축출하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당정 갈등을 일으키는 등 정당 정치의 밑동을 으스러뜨리며 국정 동력을 스스로 상실시켰다.
국민적 우려가 큰 인물들이 주요 공직에 임명된 것도 민주주의 후퇴의 한 단면이다. 그간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들은 해당 분야의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철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들이다. 과거 “불법파업에는 손배(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이라고 하는 등 반노동 발언을 일삼아온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친일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차별금지법 도입에 앞장서야 할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는 9월3일 인사청문회에서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반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인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연금·의료·노동·교육 개혁을 강조해왔지만 그간 해왔던 정책 행보 가운데 국민의 박수를 받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던 의료개혁은 ‘의사 2천 명 증원’이라는 숫자에 가로막혀 막다른 골목까지 와 있는 상태다. 응급 환자가 늘어나는 추석을 앞두고 국민적 불안이 높아지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브리핑에서 “의료 현장을 한 번 가보시라.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 중”이라며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답을 내놨다.
의료 현장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붙이는 윤 대통령의 머릿속엔 의료개혁을 성공시켜 국정 동력이 살아나는 시나리오만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의지대로 ‘버티기’를 통해 의료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에 상당한 의구심이 인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권에서는 추석만 무사히 넘기면 게임이 끝난다고 보는 것 같다. 이후에 의사들이 투항하고 의료 현장에 복귀하면 윤 대통령의 승리가 되는 것”이라며 “하지만 반대로 의료개혁이 실패할 경우엔 대통령이 오만과 객기로 국민의 생명까지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속도를 내기 시작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현 정권에 역풍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 전 사위의 ‘타이이스타젯 채용 특혜 의혹’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수사엔 성역이 존재할 수 없기에 그게 누구든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공정한 수사’다. 국민은 이번 사건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비교하며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조만간 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게 될 경우 ‘황제 출장조사’로 논란이 일었던 김 여사와의 차이가 부각되며 ‘선택적 정의’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채 상병 특검법’이 어떻게 처리되느냐도 향후 정국에 중요한 변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1일 회담을 열어 채 상병 특검법을 논의했으나 이견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 5당은 9월3일 특검 후보를 일차적으로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법안을 새로 발의했다. 한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며 약속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며 한 대표를 압박한 것이다.
현재까지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친윤계(친윤석열계)의 눈치를 보며 법안 발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친한계(친한동훈계)인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8월22일 언론 인터뷰에서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결과가) 9월 중에는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결과가 나온 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당내 논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의원의 바람과 달리 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당장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초대 공수처장을 맡았던 김진욱 전 공수처장은 9월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사 대상자가 많이 남았다”며 “올해 안에 조사 마치고 한두 달 플러스해서 올해 안에 끝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공수처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약속한 한 대표가 버티기에는 상당히 긴 시간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야당의 특검법에 반대만 할 경우 현재도 불안한 한 대표의 당내 입지는 앞으로 더욱 흔들릴 공산이 크다. 최창열 용인대 교수는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 나가야 당대표로서의 위상이 서고 세력도 붙게 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전격적으로 특검을 수용한다면 정국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특검법인 만큼 상황에 따라 대통령 탄핵으로 급발진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논란 역시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국정 운영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소집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심위가 기소를 권고한다면 검찰의 무혐의 결론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크고, 불기소를 권고한다고 해도 공정성 논란 속에서 특검 요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입장에서 향후 정국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는 것은 이재명 대표의 1심 재판 결과다. 이 대표 앞에 놓인 여러 재판 가운데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사건의 경우 9월 중 결심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이르면 10월, 늦어도 11월에는 1심 선고가 나리라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 전망이다. 두 사건에서 무죄를 받거나 당선무효형 이하 형을 선고받으면 이 대표의 대선가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나오거나 위증교사 사건에서 금고 이상 형이 나오면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고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통령 선거 출마가 원천 봉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안에 판결이 나는 것은 1심일 뿐이지만 민주당 안에서 ‘플랜 비(B)’를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되기 시작한다면 판이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이 국면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태도와 국민 여론에 따라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1심에서 이 대표가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민주당이 법정 싸움을 계속하는 한편 ‘민생 중심으로 간다’는 입장을 정할지, 아니면 법원도 뒤엎어야 한다고 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에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층이 각각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1심 판결을 앞두고 비명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8월26일 라디오 방송 출연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를 향해 “법안을 완성할 때 (여야) 양쪽이 타협을 해서라도 결과물을 내야 한다. 이 대표가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면, 지금부턴 ‘책임을 나누겠다’는 유연한 리더십을 보이는 게 다음 대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쓴소리했다. 김 전 총리 외에 친문재인계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4.0’도 8월28일 정기 총회를 열며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실패한 비명계 일부는 ‘초일회’를 꾸리며 외연 확장을 꾀하고 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플랜 비’로 떠오를 가능성도 여전하다.
제22대 국회가 9월2일 개원한 뒤 여야는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있다. 10월7일부터는 국정감사가 열리며 창(야당)과 방패(여당)의 접전도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2특검(채 상병·김건희 특검) 4국조(채 상병 사건, 방송 장악, 양평고속도로 의혹, 동해 유전 개발 관련 국정조사) 카드를 손에 쥔 채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한동훈 대표가 이를 어떻게 방어해나갈지 궁금한 대목이다. 의료대란 심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채 상병·김건희 특검 등 여러 변수와 맞물려 2024년 하반기에 또 한번 혼란스러운 정국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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