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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대는 윤 대통령, 보수에게도 버림받을라

총선 뒤 첫 입장 발표 ‘하던 대로 하겠다’니… 가까스로 탄핵 저지선 지켜낸 이들도 무릎이 꺾인다
등록 2024-04-19 23:10 수정 2024-04-21 11:33
한 시민이 2024년 4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생중계 머리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 시민이 2024년 4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생중계 머리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짐작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와 반성을 내놓지 않았다. 며칠 두문불출하다 내놓은 메시지에 쇄신 의지는커녕 계획도 없다. ‘나는 잘했는데 너희들이 몰라주는 거야’뿐이다. 공직 기강을 더 잡고 민생 토론을 더 하겠다는 공허한 말만 동동 뜬다. 그렇게 지시했는데도 제대로 하지 못한 공무원들이 문제이고, 그렇게 훈시했는데도 못 알아먹는 국민이 정녕 문제인 것이다. 평행 우주다.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머리 발언 뒤 참모들은 언제나처럼 “비공개로 국민께 죄송하다 했다” “야당 대표와의 만남 가능성도 열려 있다” 등의 ‘필수 해례본’을 보탰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총리, 비서실장, 장관 후보군의 이름도 마구잡이로 흘러나온다. 급하니까 막 던져보는 걸 모두 안다. 대통령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않을 것이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영 그렇다면 바꿔버리…(이하 생략).

말을 줄이는 이유는 ‘그럼에도’ 집권여당에 108석을 만들어준 분들을 헤아려서다. 출구조사 결과 ‘아노미’를 일으킬 정도로 입을 닫은 보수 표심 말이다. 단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창피해 죽을 지경이라서. 평생 ‘기득권의 지배는 당연’하고 ‘이기는 편 내 편’의 정치적 견해를 가져온 정통 티케이(TK) 출신의 보수 할배, 구순 넘은 내 아버지도 그중 한 분이다. 딱 한 번, 추운 겨울에 촛불 들고 고생한 젊은 사람들 보기 미안해서 그 뒤 이어진 대선에서 기권한 게 유일한 정치적 일탈이었던 적극 투표 행위자다. 그런 아버지가 이번에는 ‘쪽팔려서’ 투표 안 하려 했는데, 이러다 진짜 야당 200석 되겠다 싶어 뒤늦게 나갔다. 카카오톡이나 동네 골목시장 등 온·오프라인 어르신 커뮤니티는 투표날 오후 들어 부쩍 ‘소리 없는 아우성’ 모드였다. 어머니와 시장 상인이 은밀히 주고받은 말은 “딱 한 번만 더” “딱 한 표가 모자란단다”였다. 어머니 고향 친구도 여럿 전화했다.

아버지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 있다. 만약 지지하지 않는 처지에서 국민의힘이 200석 넘게 싹쓸이하는 세상은 어떻게 다가올까. 상상만 해도 공포 아니겠냐고. 리더가 이재명이든 삼재명이든 작대기든 아무리 싫어도 일단 지지하고 보지 않겠느냐고. 지금 윤석열 체제를 그래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런 마음도 담겨 있다. 이념이든 신념이든 정체성이든 애국하는 마음이든 역지사지가 가능하다. 설사 ‘정치적 내전’ 상태가 길어지며 자리잡은 확증편향일지라도 저마다 진심이 있다.

심판 ‘분노’가 거셌지만 그걸 또 가까스로 막아낸 건 ‘공포’였다. 나라가 넘어가는 공포 혹은 나라 결딴의 공포일 터이다. 정책은 됐고, 인물도 알 바 아닌, 쓰나미 같은 정권 심판 바람에 맞서 가까스로 탄핵 저지선을 지켜낸 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좁은 땅에서 극심한 수도권 쏠림으로 더욱 복닥복닥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안다. 아무리 미워도 몰아낼 수 없고, 진보 정권이건 보수 정권이건 망하면 모두 같이 망한다는 걸. 그리하여 저마다 고심과 결단에 따른 투표 행위를 한다. 그 표심을 무시해선 안 된다.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윤 대통령이 해버렸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집권여당 100석 이하를 막아낸 이들은 무릎이 꺾인다. 이렇게까지 용을 쓰며 붙잡아줬는데 여전히 뻗대다니.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니. 계속 이러면 윤 대통령은 보수 세력에게 먼저 버림받을 것이다. 이대로 3년도 길지만, 3년 뒤는 더 암울하기 때문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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