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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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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위선

등록 2024-03-23 02:41 수정 2024-03-29 02:06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중앙당 창당대회(위)와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 모습.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중앙당 창당대회(위)와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 모습. 연합뉴스


양당제의 폐해는 한국 정치가 명징한 사례다. 이 제도에서는 선거의 승자가 임기 동안 반드시 실패해야 패자가 다음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협치가 이뤄질 수 없다. 극심한 갈등과 대립, 척결과 청산의 정치가 횡행하는 까닭이다. 다원화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도, 불평등과 기후붕괴 등 당면한 사회적 과제를 풀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권력만 양쪽을 진자처럼 오가고 사회는 변하는 게 없다. 이런 문제의식이 오랫동안 공유된 끝에, 제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12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다른 정치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양당은 기어코 제도의 빈틈을 찾아냈다. 위성정당이 그것이다. 국민의힘은 제21대 총선 때부터 양당제 문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위성정당을 거듭 만들었다. 앞선 기호를 받기 위한 ‘의원 꿔주기’, 비슷한 색깔의 옷을 입고 하는 ‘병풍 유세’ 등의 꼼수가 모두 국민의힘에서 탄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1대 총선 때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사과했지만,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한쪽은 야만이고 다른 한쪽은 위선이다. 어떤 이는 야만이 위선을 초래했고, 위선이 그래도 야만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염치가 있는 위선이 야만보다 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야만을 명분 삼아 염치마저 잊은 노골적 위선은 야만과 다르다 할 수 없다.

위성정당 공천 과정에서도 야만과 위선의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대변하는 친윤 세력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기 세력을 위성정당 비례 순번에 얼마나 더 많이 밀어넣느냐를 두고 볼썽사나운 갈등을 연출한다. 여기에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는 없고 오로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야만만 존재한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은 시민사회 대표를 자처하는 이들이 추천한 비례대표 후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과 ‘병역 기피’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교체했다. 심지어 병역 기피자로 꼽힌 사람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과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도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위선의 사례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진보 진영 전체를 위기로 내몬다는 점이다. 위성정당에 참여한 시민사회 인사들은 시민사회 대표성을 의심받는다. 정작 위성정당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인사들은 이미 위성정당과 한편으로 인식돼 비판의 명분을 빼앗겼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후보들의 공천 박탈로 진보적 가치까지 위협받는다. 이뿐만 아니다. 진보당의 위성정당 참여로 인해 민주노총 내부 갈등이 폭발했고, 녹색정의당·노동당과 만든 진보정당 선거연합 체제도 붕괴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위성정당인가’라는 물음만 앙상하게 남았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담겼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괴로운 건 선거가 임박할수록 사회정치적 담론이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으로 압축되리라는 점이다. 평소에는 사회구조 변혁을 얘기하던 사람들도 이때가 되면 ‘고담준론’을 버리고 양대 세력 내부 사람으로 빙의해 승패의 전략을 진지하게 따진다. 승패의 게임이 아닌 정치를 기원하는 마음이 정치적 냉소로 읽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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