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행위다. 그런데 정치의 축제가 돼야 할 4·10 총선이 정작 퇴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유영하·도태우 변호사의 대구 지역 공천을 시도했다. 유영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손과 발 같은 사람이다. 도태우는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북한개입설’이라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비판이 거세게 일었지만, 유영하는 끝내 공천을 받았고, 도태우는 공천관리위원 전원일치로 공천 유지를 결정했다가 끝내 공천이 취소됐다. 이는 국민의힘이 2017년 박근혜 탄핵 이전으로 퇴행했음을 뜻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오스트레일리아(호주)대사로 임명했다. 이종섭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국금지를 뚫고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법무부는 출국금지 해제 사유로 이종섭이 “공수처에 증거물을 제출”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종섭이 제출한 증거물인 휴대전화는 외압 의혹이 제기된 뒤 새로 개통한 것이었다.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한다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어느덧 자기 측근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는 구태 권력으로 퇴행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이런 퇴행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남용한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문제는 이런 퇴행이 정치의 동반퇴행에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야권에선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다. 이 지지율 상승은 퇴행을 거듭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세력의 총선 승리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절박감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명횡사’ 공천에 대한 불만,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새진보연합과 진보당, 시민사회 추천 후보들에 대한 거부감과 결합하면서 나온 결과다. 그러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계급 재생산과 특권 대물림을 위해 저질렀던 입시 비리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어느덧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상대의 퇴행을 명분 삼아 우리의 타락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현상 역시 민주당 세력의 퇴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국민의힘은 이미 조국 사태 때 탄핵 이전으로 퇴행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2017년 탄핵되면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처절한 성찰과 쇄신이 필요한 처지가 됐다. 하지만 2019년 조국 사태를 명분 삼아 과거로 회귀하고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당 지도부가 대거 참여했다. 이렇게 거대 양당이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동반퇴행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건 다수 시민이 거대 양당 체제의 존속을 “마치 자연이 그러하듯, 어쩔 수 없는 것, 원래 그러했던 것으로 치부”(이번호 ‘역사책 달리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반퇴행의 정치에서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심판과 청산만 이야기”할 뿐, 기후위기와 불평등, 지역소멸 등과 같이 한국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위해 싸우는 정치”(이번호 ‘4·10 진보의 얼굴들’)가 자리잡을 곳이 없다. 이런 동반퇴행의 끝은 시민의 냉소와 정치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총선까지는 아직 3주 남짓 시간이 남았다. 지금부터라도 미래를 말하는 정치가 복원될 수 있어야겠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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