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거대 양당에서) 공천받은 분들은 지난 한 달의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이들이었다.”
녹색정의당 김혜미 마포갑 국회의원 후보가 2024년 3월6일 자신의 홍보 뉴스레터인 ‘김혜미레터’에 쓴 글이다. 김 후보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 일대에서, 차량이 정체된 교통섬 구간에서, 초등학교 앞에서 선거운동을 해왔다. 자신만큼이나 필사적인 거대 양당의 예비후보들을 마주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4월10일 총선이 임박해오자 이 예비후보들은 일순간 사라졌다. 대신 4선 중진 노웅래 의원이 불출마하기로 한 자리에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지은 전 총경이, 국민의힘에선 조정훈 의원이 공천됐다. 상대적으로 대중 인지도가 높은 이들이었다.
김 후보는 이 후보들을 보며 “마포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그려온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을 걱정할 때는 아니다. 녹색정의당 정당 지지율은 2% 남짓. 김 후보는 그간 마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해왔다지만 대중 인지도는 이 전 총경이나 조 의원에게 미치지 못한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쯤은 안다”면서도 그가 선거운동에 열심히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2024년 3월11일 선거사무소에서 김 후보를 만났다.
—뉴스레터 등 다양하게 선거운동을 하던데 경쟁 정당 예비후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마포갑은 예비후보가 많아 선거가 임박했단 걸 크게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민주당만 해도 7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했고, 국민의힘도 출마자가 4명이었다. 그런데 공천이 마무리되고 예비후보들이 한꺼번에 빠지는 상황을 보면서 당황스러웠다. 지금의 공천 시스템은 사회적 낭비다. 공천 가능성과 무관하게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펼침막을 여기저기 걸고 시민을 만나 ‘이 지역에 비전과 대안이 있다’고 얘기해온 예비후보들 대신 이름이 더 알려진 인물이 전략적으로 공천받는다. 지역에 대한 비전이 있는 정치인이 출마해야 당선에 실패했더라도 4년 뒤 선거를 준비하면서 지역사회와 정책·정치적 비전을 계속 나눌 수 있다.”
—김혜미 후보가 가진 마포에 대한 비전은 뭔가.
“마포구는 독특한 동네다. 진보 정치가 필요한 동네이자 진보 정치와 닮은 동네다. 예를 들어 마포는 우리가 흔히 ‘기후 현안’이라고 하는 문제를 다 갖춘 동네다. 당인리발전소라는 오래된 복합화력발전소가 있고 쓰레기소각장 추가 건설 문제가 걸려 있다. 다른 도시에 비해선 많은 편이라지만 여전히 서울 도심 숲은 부족한 상황이지 않나. 마포에는 경의선 공유지라는 훌륭한 공간이 수년째 펜스로 둘러싸여 황무지처럼 돼 있다. 말하자면 ‘기후 의제’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기후정치와 만났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마포구 상암동이 서울의 새 광역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 예정지로 확정됐다. 주민들은 당연히 반대하는 것 아닌가.
“수도권 폐기물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무조건 반대’하는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녹색당에선 이 문제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당원들끼리 ‘반대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우선 서울시가 ‘쓰레기 감축 로드맵부터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1천t짜리 쓰레기소각장이 필요해 짓는 거라면 1천만 서울 시민이 하루에 100g씩만 쓰레기양을 줄여도 엄청난 효과가 날 수 있다. 녹색당에서 이 얘길 해왔는데, 이제는 박강수 마포구청장(국민의힘)도 쓰레기 자체를 줄이고 기존 소각장을 개보수하잔 얘길 하더라. 주민들은 아이디어가 합리적인 대안이면 동의한다. 주민들이 지금 서울시에 분노하는 건 ‘민주적 행정 절차’ 없이 소각장 건설이 추진됐다는 부분이다.”
—비현실적이란 지적도 있다. 쓰레기 감축과 관련해 정치인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했던 걸 생각해보라. 보증금으로 다회용 컵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후퇴했다. 한국 시민들은 무척 똑똑하다. 제도가 마련되고 시스템이 있으면 적응한다. 쓰레기 문제를 시민 소양의 문제로 얘기하는 건 정치가 책임을 떠넘기는 거다. 정치가 시스템을 만들어준 뒤 시민들이 적응하게 해야 한다. 처음 쓰레기 분리수거제를 도입할 때 못할 것처럼 이야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분리배출한다.”
—기후정치가 이야기하는 것과 경제 성장이 충돌한다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기후정치의 범위가 워낙 넓지 않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우리에겐 ‘탄소 감축’이란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거다.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 독일은 생산 전력의 절반 가까이가 재생에너지다.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굉장히 햇빛이 좋거나 바람이 잘 불거나 하는 나라가 아님에도 그렇다. 이제는 ‘탄소세’ ‘아르이(RE)100’ 등 기업경쟁력 관점에서도 기후 문제에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 기업이 탄소 감축 노력에서 뒤처지면 기업 경쟁력도 뒤처지는 거다.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자’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한 기후정책 퇴행을 막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치를 청부업자에게 맡길 수 없다. 심판과 청산의 정치는 단언컨대 미래를 찾는 일이 될 수 없다’고 출마선언문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인가.
“청부업자라는 아주 직관적인 용어를 쓴 건 정치가 ‘심판과 청산’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부터 보면 대통령도 법률인, 당 주요 인사들도 법률인, 죄다 법률가다. 법률가의 사고방식으로 정치하면 ‘심판대’가 등장한다. 심판대만 있어도 되면 사실 우리에겐 정치가 필요 없다. 정치는 ‘문제를 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검찰 독재’나 ‘운동권 청산’ 같은 구호로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싸우는 정치여야 한다. ‘위성정당 재현’ 역시 다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다. 진보정치의 공간을 줄이는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에는 신념과 이념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있어야 가치 판단이 있고 정책이 생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권력 전쟁과 승리만을 위한 정치’가 남는다.”
—대학·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했는데, 기후정치에 뛰어든 이유가 뭔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라는 단체에서 5년 가까이 일했다. 이 단체는 300명 정도 회원의 90%가 사회복지사다. 제 역할은 시민들이 낸 후원금이나 운영위원들의 활동을 ‘정책 변화’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복지국가의 한계를 느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복지국가’ 개념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라는, 어떤 인간도 막을 수 없는 기후 재난까지 닥쳤을 때 빈곤층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너무나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침수가 발생했을 때 반지하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장애인, 한겨울 쪽방촌에서 숨진 채 발견된 노부부 등의 뉴스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장면으로 예를 든다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10년짜리 임대주택에 살게 된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다. 가보니 방 3개짜리 다세대 주택인데, 생전 처음 보는 남성 어르신 3명을 한꺼번에 살게 한 집이었다. 집은 매우 낡았는데 평수는 넓어서 너무 추웠고, 가스밸브가 7∼8개 달린 집이었다. 이분들이 난방할 수 있었을까? 집 안이 바깥만큼 추워서 신문지를 바닥에 모두 깔아놓은 상태였다. 난방을 거의 틀지 않았음에도 난방비가 부담돼 ‘서로 많이 썼다’고 비난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물 안 썼다’ ‘난방 안 했다’ 등. 이런 상황을 만든 건 행정과 정치다. 애초에 ‘노인 빈곤층 임대주택’으로 적합한 곳이 아니었던 거다. 우리나라 임대주택은 형태가 지나치게 다양해 행정 중심적이고 사각지대가 많다. 이 공백을 만든 건 정치다. 가령 정부가 이 건물을 임대주택용으로 매입했다면 ‘그린 리모델링’을 거친 뒤 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게 맞지 않을까.”
—국회에 들어가면 어떤 입법을 추진해보고 싶나.
“국회에서 이미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통과됐지만, 여기에서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여러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이 법안을 재개정하고 여러 기후운동 단체가 이야기하는 ‘기후정의 기본법’ 등과 같은 법을 만들고 싶다. 또 국회에 기후위기 전담 상임위원회가 없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노동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기후 상임위가 따로 필요하다. 국회에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는 있었지만 여기는 입법권도 없었고 회의만 여섯 번 하고 끝나지 않았나.”
—녹색정의당 지지율은 낮고, 유권자는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다.
“당장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미래를 보는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보정당 자체가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거대 양당이 ‘지금의 일을 해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 진보정당의 역할은 ‘미래 시점에서 지금 문제를 보고 대안을 찾는 일’이다. 유럽에서는 녹색당 등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사회적 격차가 줄어가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기후정치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사회적 불평등이나 격차를 줄여가는 데 정치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당장의 목표는 뭔가.
“5% 이상 득표율을 얻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만든 뒤 녹색정의당이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주력하는 선거운동 장소 가운데 하나가 초등학교 앞이다. 이들 초등학생은 기후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겪게 될 당사자다. 지금 성인이 된 유권자도 진보정치에서는 매우 중요한 유권자다. 서강대 등 대학 모임도 방문해 토론한다. 함께할 수 있는 정치는 어떤 모습인지 설명하고 설득할 거다. 아무리 위축되는 상황이라도 물러서지 않고 멈추지 않고 선거를 완주하면서 진보정치의 길을 걷겠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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