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모인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위해서다. 총선을 석 달여 앞둔 지금까지도 선거제도는 확정되지 않았다. 논의되는 안들도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정당 대부분이 선택한 전략이 비슷하다. 그래서 뭉친다. 다만 어떤 정당과 어떤 방식으로 연합할지에는 생각이 다르다. 2023년 12월 말 기준, 크게 두 가지 ‘연합’의 흐름이 있다.
먼저 움직임에 나선 것은 정의당이었다. 정의당은 2023년 11월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선거연합정당’을 만들자고 녹색당과 노동당, 진보당, 민주노총 등에 제안했다. 이 제안에 현재까지 녹색당만 화답했다. 진보당은 표면적으로는 최대 진보 연합을 위한 별도의 신당을 역제안하며 거절했다. 노동당도 총선 과정에서 연대는 할 수 있지만, 정의당이 제안한 플랫폼 형식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11월 말 ‘개혁연합신당'을 제안했다. 열린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이미 합류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까지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 조 전 장관은 12월22일 사회민주당이 주최한 정치 토크쇼 사회를 봤다. 이 자리에서 “재판을 받고 있고 선고를 앞둔 상황”이라면서도 “재판과 관계없이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소수정당 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연합할지가 지금으로선 가장 큰 관심사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에 내외부 비판이 많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서 범진보가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을 추진하리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민주당의 준연동형 포기는 대선 패배로 이어진다’ 기사 참조) <한겨레21>은 민주당 비례연합정당에 관해 소수정당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기본소득당이 주도하는 개혁연합신당은 긍정적 답을 내놨다. 2023년 12월27일 <한겨레21>과 만난 용혜인 의원(개혁연합신당 공동대표)은 “민주당도 당연히 개혁 정치의 연대 파트너”라며 “저희가 구상하는 방향에 연합정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으면 당연히 함께하는 것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엔 “그런 방식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진영론에 가깝다”며 “‘누구니까 안 돼’가 아니라 개혁 과제를 두고 합의할 수 있으면 연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대신 ‘최대 진보’를 거론했던 진보당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진보당 손솔 대변인은 전화 통화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모여보자는 것이 (저희가) 원하는 바”라며 “민주당이 그렇게 결단하는 게 필요하다. (민주당이 제안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진보당의 경우 민주당 내부에서 함께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있다.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는 정의당과 녹색당은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에 부정적이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한겨레21>에 “논의의 장이 열리면 여러 방안을 갖고 논의해봐야 한다”면서도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면 위성정당 논란이 벌어질 수 있고, 그것을 수용하는 건 내부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도 “진보세력의 연대에는 공감하지만 원칙 없이 확장되는 것은 우려한다”며 “(민주당도) 기후정치 세력화의 관점에서 보면 가덕도 공항이나 강원특별법 등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노동당의 경우 비례연합정당 합류에 대해 “1%의 가능성도 없다”고 일축했다.
정의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을 만들고 뒷순위라도 참여하면 절대 같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정의당 관계자는 “정의당이 넘지 못하는 금기선 같은 게 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정의당이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에 반대해왔는데, 민주당이 뒷순위라도 들어온다고 하면 우리가 참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의당 내부에선 민주당이 비례후보를 내지 않고, 내더라도 당선된 사람이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형태의 비례연합정당이라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최근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 칼럼에서 언급한 `자매정당'과 같은 형태다. 유 전 이사장은 민주당이 현행 선거법 제도에서 택해야 할 두 대안 중 하나로 자매정당 노선을 꼽았는데,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지자자들에게는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멈추게 할 정당 중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는 정당에 투표하라고 호소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민주당이 현실적으로 이 안을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정의당은 최근 오히려 민주당에 준연동형 캡(상한선)을 다시 두는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수 47석 중 17석은 병립형으로, 30석은 연동형으로 상한선을 뒀다. 이번 총선은 상한선이 사라지면서 47석 모두 연동형으로 됐는데, 이를 다시 절반(23석)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민주당 입장에서도 위성정당을 만들 필요 없이 병립형 부분에서 의석을 가져갈 수 있고, 이재명 대표의 공천권도 보장할 수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 제일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12월26일 처음 민주당에 이 제안을 꺼냈고, 민주당도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한다.
이렇게 소수정당이 연합하고 고민하며 여러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도 결국 선거제도 때문이다. 각자 지향하는 가치는 다르지만 대다수 소수정당이 원하는 바람직한 선거제도는 비슷하다. 국민이 지지하는 만큼, 의석수를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립형에서 준연동형으로 선거제도가 바뀐 이후 4년 동안 선거제도 개혁은 단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지금의 선거제도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19년 민주당과 소수정당들이 합의해서 만든 제도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방식인 병립형과 달리,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배분된 의석수보다 모자랄 경우 절반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지역구 당선자를 낼 가능성이 적은 소수정당으로서는 그나마 병립형보다는 한 발 나아간 제도였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등장하면서 비례대표 의석도 대부분 거대 양당이 나눠 가졌다.
그간 선거제도 논의 과정에서 소수정당은 지속적으로 양당을 압박했다. 토론회부터 시위, 기자회견, 서명운동 등. 그러나 결정은 이들의 몫이 아니었다. 정의당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거대 양당 소속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두 간사가 거의 밀실 합의하듯 하잖아요. 사실 저희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죠. (민주당과는) 비공식적으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만나기도 하고 얘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결정은 이재명 대표가 하잖아요. 이 대표가 모든 키를 쥔 거예요.”
정치개혁공동행동·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를 맡은 김찬휘 녹색당 대표의 설명도 비슷하다. “민주당에서 55명만 병립형 회귀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고요. 위성정당 방지법 제정에 75명이 서명했어요. 나머지는 다 이 대표 입만 보고 있어요. 정치개혁공동행동 대표단에서 이 대표를 만났을 때 여러 의견을 얘기했는데 듣기만 하고 말을 아끼더라고요. 그리고 유명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제21대 국회에도 소수정당들이 바라는 선거제도 개혁을 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특히 2023년 5월 국회 정개특위에서 시민 469명에게 선거제 개편 공론조사를 벌였는데, 10명 중 7명이 “비례대표를 더 늘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공론조사는 시민들에게 공적 이슈에 대한 학습과 토론 등을 할 기회를 제공한 뒤 의견을 묻는 방식이다. 27%였던 비례대표 확대 의견은 13일 동안 숙의 절차를 거치며 43%포인트나 늘었다. 이런 결과에도 국회는 선거제 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공론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요. 공론조사 결과는 굉장히 명확했거든요. 지역구는 소선거제 중심으로 가고 비례 의석과 전체 의석을 늘려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 정치인들 각자가 생각하는 ‘아전인수 격' 해석이 나오더라고요.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가장 큰 패착이라고 봐요.”(용혜인 의원)
비례성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선거제도가 바뀐다면, 소수정당은 지금과 같은 전략을 취할 필요도 없다. “3% 봉쇄조항이라는 진입장벽(득표율 3% 넘는 정당에 1석을 배분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이 없으면 연합 안 해도 되죠. 지금은 진입장벽도 있고 성과도 잘 나지 않으니까 한번에 돌파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방법을 쓰는 거고요.” 김찬휘 대표는 봉쇄조항이 없는 네덜란드 사례를 언급했다. 의석수가 150개인 네덜란드는 0.67%의 지지만 얻으면 원내 진입이 가능하다.
의석수가 300개인 우리나라의 경우 완전 연동제에 봉쇄조항이 없다면 약 0.33%의 지지율만으로 1석을 확보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능력이 안 되는 소수정당을 (국회에) 넣어달라는 얘기가 아니고, 소수정당을 뽑은 국민의 의사를 정당하게 반영해달라는 것”이라며 “2%든 1%든 반영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정치 다양성”이라고 강조했다. 용 의원은 “소수정당이 난립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정당이 없기 때문에 합의하고 논의하고 협상하는 문화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선거제도 개혁의 열쇠를 쥔 민주당이 병립형 회귀냐 준연동형 유지냐 사이에서 고민하는 만큼, 당장 제22대 총선 전 소수정당에 유리한 형태의 선거제도 개혁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제22대 국회에선 단 한 걸음이라도 발전할 수 있을까.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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