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선왕 효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왕위에 오른 열여덟살의 임금 현종은 첫 정치 현안으로 ‘상복을 입는 기간’을 정해야 했다. ‘예송논쟁’(기해예송·갑인예송)의 시작이다. 자식(효종)의 죽음에 부모(효종의 새어머니 장렬왕후)는 몇 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조정 중신들은 서인과 남인으로 갈라져 싸웠다.(기해예송)
후대의 눈에 예송논쟁은 쓸데없는 일로 치부된다. 하지만 속에 숨어 있는 당대 정치적 함의를 따져보면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효종의 아버지 인조는 장남 소현세자가 죽은 뒤 후대를 장손(소현세자의 장남)이 아닌 차남, 즉 효종으로 하여금 잇게 했다. 병자호란 패배 후 경직되고 보수화되던 당대 조선에서 ‘장자 우선’이라는 유교 원칙을 무시한 인조의 행동은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기해예송에서 서인과 남인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장자 우선’ 원칙을 어긴 왕실의 특수성을 인정하느냐는 쪽으로 이동했다. 국왕의 정통성을 둘러싼 정치 투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결국 1차 예송은 서인의 논리대로 효종을 장남으로 인정할 경우 치르는 ‘삼년상’이 아닌, 차남으로 인정한 ‘일년상’으로 결론 난다. 겉으로는 국제(조선 초 정한 예법)에 장·차남 모두 상관없이 일년상을 치렀다는 점을 내세워 ‘정통성’ 시비를 최소화했다.
15년 뒤 서른 살이 넘은 현종은 두 번째 예송과 마주한다. 이번에는 효종의 부인이자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의 사망에 따른 상복 문제였다. 여전히 장렬왕후는 살아 있었다. 서인으로 짜인 조정은 큰 검토 없이 인선왕후를 둘째 며느리에 견주면서 장렬왕후의 상복 입는 기간을 9개월로 정한다. 한 유생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두 번째 예송’(갑인예송)이 벌어진다.
이번엔 국왕 현종과 서인의 대립으로 진행됐다. 현종은 시종일관 첫 번째 예송 당시 겉으로는 국제의 원칙을 따른 점을 지적하며 “왜 지금과 옛날이 다르냐”고 했고, 서인은 이 논리를 맞받아치지 못했다. 결국 명분에서 앞선 현종이 승리했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현종의 사후 처리다. 현종은 기해예송, 갑인예송 때 모두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자신의 승리로 끝난 두 번째 예송에서도 현종은 서인인 영의정 김수흥을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남인계 허적을 영의정에 올리는 조치 정도로 끝냈다. 효를 중요하게 여긴 조선시대. 아버지 효종의 상복 문제는 왕의 정통성 시비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왕조시대 왕의 정통성을 둘러싼 시비는 역모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사안이었다. 현종은 예송을 ‘이념적 갈등’이 아닌 ‘정책적 갈등’으로 다루며 수위를 관리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태어나므로 생각이 모두 다르며, 모든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하여 사회를 이끄는 정치에서 갈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문제는 정치인이 어떻게 갈등을 다루느냐에 있다. 갈등을 무조건 낮춰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때와 상황, 조건에 맞춰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17세기 중·후반 조선을 다스린 현종의 리더십은 복기할 만하다. 그는 이념적 대립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오늘날 현종을 아는 사람은 소수지만, 그의 행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이념’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를 볼 때마다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더불어민주당의 논리가 맞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이 지금의 갈등은 거대 야당 민주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권력을 쥐고, ‘책임’을 져야 하는 여당과 대통령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갈등을 조장할 시기냐, 아니면 갈등을 관리할 시기냐라는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더 많다. 하지만 성별, 세대, 지역, 자산 등 모든 것에서 대립하고 서로를 깎아내리는 지금, 이 땅 위 지도자들은 갈등을 관리하기보다 부추기는 모습을 선택하고 있다. 이건 옳은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8월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여소야대에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 세력들이 잡고 있어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했다. 야당인 민주당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의심하는 심리가 그대로 묻어져 나온다. 9월1일에는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념의 명확화나 추구하는 가치를 밀고 나가려는 의지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를 표현하는 방식과 태도에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에선 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묻어난다. 사상가와 학자로선 나쁘지 않은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로선 어떨까. 특히나 갈등이 최고조로 위험수위에 치닫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떨까.
9월4일 발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8월 5주차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부정 응답한 61.1% 중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54.5%에 달했다. 부정 응답자의 90% 가까이가 “매우 못하고 있다”며 강한 불신을 보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2.0%포인트.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 ‘다른 의견’이라고 여기기보다 ‘틀린 의견’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한 공동체에 ‘다름’보다 ‘틀림’이 더 많이 울려퍼진다는 건, 공동체가 무너지려는 신호다.
현종의 아들 숙종은 재위 동안 아버지와 달리 환국(換局) 정치를 단행해 많은 신하를 죽였다. 부인(인현왕후·장희빈)을 ‘정치’에 이용했고, 그들을 도구로 사용했다. 왕권을 강화한다는 그의 환국정치로 수많은 인사가 죽음을 맞았다. 남인 윤휴는 사약을 마시며 “나라에서 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이유는 뭐냐”고 부르짖었다. 서인 김수항은 죽어가며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마라”고 자손에게 당부했다. 숙종의 환국으로 갈등이 얽혔고 당파 간 증오는 오랫동안 조선 조정의 뿌리 깊은 한계로 남았다. 이는 조선이라는 공동체가 단합하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숙종이 수많은 치적을 남겼음에도 그를 높이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400년이 지난 현재, 현종과 숙종 중 어느 왕의 리더십이 지금 정치에 더 맞을까.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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