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는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 …나도 그 사람을 조금은 아는데 그 마음이 곧지 않다.”
1519년 12월16일(이하 모든 날짜는 음력) 기묘사화로 몰락한 조광조 일파의 형량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한 신하들은 국왕 중종의 ‘뒷담화’를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조광조가 어떤 사람인가. 도학(道學), 즉 도덕정치를 내세우던 인물이다. 거짓말과 술수를 경멸했다. 오죽하면 군사작전에서도 술수보다 정정당당하게 상대를 ‘교화’하는 것이 정도라고 주장했다. 중종은 그런 조광조를 위선자라며 죽여야 한다고 했다. 신하들이 조광조의 죄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말렸지만, 기어코 조광조는 그해 12월20일 중종의 명으로 죽는다.
사실 11월15일의 기묘사화는 중종의 친위 쿠데타에 가깝다. 밤늦게 조광조 일파 숙청에 동조하는 신하들을 경복궁 신무문으로 몰래 불러 친조광조 세력을 기습적으로 체포시킨 사람이 그다. 그리고 감정적 반응을 보이며 기어코 조광조 일파를 숙청했다.
중종은 왜 그렇게 조광조를 싫어했을까. 조광조 일파는 대립하던 훈구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렴했고 삿된 이익에 구애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세제도를 개혁하려 했고, 부의 집중을 막으려 했다. 공신으로 대표되는 특권계층의 힘을 줄이려 했다.
기득권에 도전한 게 몰락의 한 이유인 건 맞다.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보여준 정치적 행보에 대한 왕의 싫증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기록을 보면 조광조 일파는 자신들은 ‘군자’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인’이므로 자신들이 옳다는 논리로 정치를 했다. 떳떳한 자신들의 주장이니 정의롭고 그러니 맞다는 논리였다. 도덕정치를 주장하던 조광조 일파에겐 ‘어떤’ 정치를 하느냐보다 ‘누가’ 정치를 하느냐가 더 중요했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잣대가 자신들에게도 적용되느냐다 .
1518년(중종 13년) 조광조는 현량과(賢良科)라는 관리 선발제도를 건의한다. 공정한 추천으로 선량한 인재를 선발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조판서 출신 남곤이 ‘결국 끼리끼리 추천될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조광조는 이 제도를 밀어붙였다. 남곤의 예상은 정확했다. 1등을 차지한 김식은 조광조의 친구였다. 조광조의 후원자인 중신 안당의 세 아들도 모조리 합격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일반적으로 과거시험 답안지에는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작성자 이름을 가리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놓고 채점관 김식이 “공정한 마음을 가지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가리는 부분을 없앴다. 그 결과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도 합격했다. 다수가 조광조 쪽 사람이었다. 시험 전 채점관이 몰래 주제를 가르쳐주는 일까지 있었다. 조광조 일파야 ‘군자’가 많아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이 행위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뻔하다. 중종이 결정한 조광조 등의 죄목은 “뜻이 맞는 자들하고만 어울리고 맞지 않으면 배척한다”, 즉 ‘내로남불’이었다.
현대의 사자성어가 된 내로남불은 사실 정권교체 전까지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쓰이던 언어였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둘러싼 논란,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성 추문과 대응은 어떠했는가. 2년 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민주당은 “내로남불의 수렁에서 하루속히 빠져나오겠다”(도종환 비상대책위원장)고 했다 . 민주당은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기회의 평등 , 과정의 공정 , 결과의 정의를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는 5년 전 탄핵당한 정당에 정권을 내줬다 . 지금도 민주당에는 내로남불이 꼬리처럼 따라다닌다 .
윤석열 정부도 내로남불의 타파, 즉 ‘공정’의 중요함을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 스스로가 새 국정 목표의 첫머리에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를 제시했고, 첫 번째 국정과제는 “상식과 공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였다. 처음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는 분명 그렇게 약속했다.
9개월이 지난 지금, 집권여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통령실과 여당 국민의힘 주류의 행보에서 공정보다는 ‘우리’가, 상식보다는 ‘내로남불’이 엿보인다.
여당 주류는 당대표 선출 규정을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 혼합방식에서 당원 투표 100%로 바꿨다. 다분히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비윤석열계 유승민 전 의원을 의식한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나? 윤 대통령과 거리감이 있던 나경원 전 의원이 이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고 출마 여부를 검토하자 대통령실이 나서서 나 전 의원의 ‘저출산 대책’을 고리 삼아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나 전 의원의 출마 여부와 전혀 상관없나? 정부 관료들이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게 원칙이라면 윤 대통령의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 지시에 “그럴 단계가 아니다”라고 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뭔가? 나 전 의원이 물러난 뒤 여론조사 1위에 오른 안철수 의원을 향해서는 ‘윤핵관’이란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 ‘안-윤 연대’라는 주장을 한다고 비판한다. 윤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인사만이 당대표를 할 수 있다는 속내가 아니면 지금의 행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윤석열 정부도 내로남불을 하고 있으니 민주당과 똑같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도덕군자이던 조광조마저 내로남불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인간 모두는 내로남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세력은 겉으로라도 내로남불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못하겠다면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을 발휘할 공간이 생긴다.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조광조의 의도는 좋았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는 선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자신들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왕은 그 주장을 ‘위선’이라고 봤다. 지금 국민은 윤석열 정부 사람들의 행보를 국가를 위한 행위라고 볼까. 자신들의 권력만을 위한 아집이라고 볼까.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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