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즉위하자마자 고립됐다. 1720년 음력 6월. 아버지 숙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경종은 걸어온 길만 따지면 ‘준비된 국왕’이었다. 세 살에 왕세자에 올라 29년간 차기 후계자로 교육받았다. 숙종 재위 말년 2년 동안엔 국왕 대신 국가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 대리청정(代理聽政)도 했다.
하지만 경종은 정작 즉위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경종은 숙종이 죽인 장희빈의 아들이었다. 숙종은 1694년 ‘갑술환국’으로 장희빈과 그를 지지하던 남인(南人)들을 몰락시킨 뒤 서인(西人), 그중에서도 노론(老論)을 조정 내 다수당으로 삼았다. 노론은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불안했다. 경종은 또 다른 서인의 분파인 소론(少論)의 보호 덕에 왕위에 올랐지만 조정 내 다수파는 여전히 노론이었다. 경종은 즉위 초 장희빈의 명예회복을 주장한 유생을 노론의 압력으로 처형해야 했다. 반면 공식 문서에 장희빈의 죄를 명확히 기술하자고 주장한 신하는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다.
노론의 불안감은 왕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졌다. 1721년 8월 노론은 서른셋인 국왕이 자식이 없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노론의 지지를 받는 연잉군(훗날 영조)을 다음 왕위 후계자(세제)로 임명하자고 주장했다. 소론이 반발했지만 노론은 다수파인 점을 이용해 소론계 신하들을 제외한 채 왕을 압박해, 세제 책봉을 받아낸다. 승리에 취한 노론 쪽 일부 강경파 신하가 더 나아갔다. 세제에 오른 연잉군이 대리청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대 정치 풍토에서 왕에게 대리청정을 요청하는 건 국왕을 무시하는 불충이었다. 그것도 즉위 1년차, 서 른 중반도 되지 않은 임금에게 한 요구였다. 그런데 이 주장을 경종이 덥석 받아버린다. 당시에는 경종의 본심을 알 수 없었다. 놀란 노론 지도부도 경종에게 여러 번 명령을 거둬달라고 했지만 경종은 명령을 고수한다. 결국 노론 지도부는 병약하고 소심한 경종이 공세에 지쳐 진심으로 왕위를 물려주려 한다고 판단했다.
권력에 취해 국왕의 본심을 읽지 못한 신하들의 행위는 곧 ‘보답’받았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노론이 안심할 무렵인 10월17일. 소론계 우의정 조태구가 비밀리에 단독으로 경종을 만난다. 국왕의 ‘비서실장’인 도승지 홍계적(노론계)이 막아온 만남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최고권력자의 돌출행동은 상황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노론은 경악했다. 실록은 “대궐 안팎이 물 끓듯 진동했다”고 썼다.
노론 신하들이 헐레벌떡 궁으로 들어간 가운데 조태구는 눈물을 흘리며 대리청정을 반대했다. 결국 경종은 명령을 거둬들였다. 그동안 노론이 한 행위가 국왕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들을 위해 한 것이었다고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국가와 국왕을 위해’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해야 한다는 노론의 논리는 명분을 잃었다. 두 달 뒤 경종은 소론 강경파의 주장을 받아 노론 쪽 신하를 대거 조정에서 내쫓는 조치(신축환국)를 단행한다.
경종이 국왕의 힘만으로 즉위 직후 노론과 대치했다면 어땠을까? 비변사를 비롯한 조정과 각 지방 권력, 병마절도사 등 군권,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 성균관까지 국가권력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노론이 곧바로 반격했을 것이다. 경종은 노론이 왕조 국가의 핵심인 ‘국왕에 대한 충성’을 훼손하게끔 보이도록 후퇴했다가 소론과의 면담으로 그동안 자기 결정이 노론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고 규정해, 명분을 확보하며 정치적 우위를 순식간에 잡아버렸다.
300년 전의 경종이 알려준 것처럼, 정치에서 ‘명분’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권력의 시작과 끝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치집단에만 명분이 중요할까. 국가 공권력을 집행하는 검찰에는 ‘공정성’이란 명분이 중요하다. 공권력 집행에서 공정성을 의심받는다면, ‘법에 의한 통치’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최근 검찰의 행동에서 공정성이 흔들리는 듯한 사례가 발견되는 것이 문제다. 2023년 9월27일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제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 수사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법원의 영장 기각이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아니다. 유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의 주요 사유로 이 대표의 방어권 보장을 들었는데 이는 ‘법의 논리’다. 또 검찰이 주장한 이 대표에 대한 위증교사 혐의는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대장동 사건 등에 대한 재판도 받고 있는데 이 재판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대표 혐의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받는다는 점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각 뒤 “이 대표에 대한 결정은 그 내용이 죄가 없다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제1야당 대표이자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에 맞서 0.7%포인트 차이로 진 사람에 대한 영장 청구, 그리고 기각은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검찰은 지난 2년간 이 대표를 계속 수사했고, 그 수사의 정점이 이번 구속영장 청구였다. 한 장관은 국회의 체포동의안 가결 뒤 이 대표를 향해 “중대범죄 혐의가 많은 혐의자”라고도 했다. 영장기각 뒤 검찰은 “사법은 정치적 문제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이원석 검찰총장)고 했지만, 구속영장의 정치적 ‘판돈’을 키워온 것도 검찰이다.
기각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했다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영장 청구를 신중하게 해야 했다. 구속을 확신했다면, 영장 기각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무직 공무원인 법무부 장관이 영장 기각을 ‘법적’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건, ‘정무직’이라는 직책의 무게감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 아닌가. 정치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다수의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행위다. 정치에선 명분이 이해의 가장 큰 조건이다. 명분을 잃어버리면 정치 영역에서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의 또 다른 가르침이다.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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