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음력 11월15일 밤. 조선왕조 제11대 임금인 중종은 승정원 몰래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을 열었다.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이 들어와 왕과 논의한 뒤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조광조와 그의 당여를 숙청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언급한(제1450호 ‘조광조도 피하지 못한 ‘내로남불’…윤석열 정부도?’) 기묘사화의 시작이다. 실록은 한밤중 떠들썩한 궁내 분위기에 ‘친(親)조광조’인 승지들이 왕이 머무는 편전으로 들어가니 이미 몇몇 신하가 들어와 있었다고 했다.
정작 중종은 자신이 주도한 게 아니라고 했다. 다음날 영의정 정광필 등이 일의 전후를 묻자, 중종은 “조정이 청한 일이었다”고 했다. 정광필은 “남곤 등이 ‘임금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조광조 등이) 조정의 일을 그르쳤다면 임금이 옳고 그름을 말씀하셔야 합니다”라고 반론했다. 정광필의 지적에 중종은 “조정의 일이 그르게 된 것을 대신(정광필)은 깊이 생각하라”며 답을 회피했다.
중종은 왜 ‘조정’에 책임을 떠넘겼을까. 중종의 심리를 엿볼 만한 대목이 있다. 거듭된 질문에 11월17일 중종은 “(남곤 등과) 이 일을 논의했는데 신무문의 공회(共會·모임)를 거치려 한다 해서 불가하다고 생각해 연추문(경복궁 서문, 훗날 영추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중종은 이후에도 신하들이 신무문으로 들어오려 했는데 바르지 못한 일 같으므로 연추문으로 들어오게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기록은 그 뒤에도 신무문이 먼저 열리면서 기묘사화가 시작됐다고 썼다. 중종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조선시대 관료들은 경복궁에 들어올 때 주로 연추문을 사용했다. ‘반(反)조광조’ 세력이 연추문으로 입궐했다면 친조광조 세력이 몰랐을 리 없다. 연추문 대신 신무문을 열었다는 건 중종이 기묘사화를 주도했다는 의미다. 중종은 이를 은폐하려 했다.
왜 그랬을까. 중종의 거짓말에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방어논리가 숨어 있다. 방어논리는 기묘사화라는 특정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종은 역대 조선왕조 국왕 중 영조(52년), 숙종(46년), 고종(43년·대한제국 포함) 다음으로 긴 39년이나 재위했지만 특별한 치적이나 개혁이 없는 임금이다. 기록에서 중종은 끊임없이 민생에 관심을 보였고, 신하들의 지적에 반성과 사과를 하며 자책하는 발언도 드물지 않게 했다. 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의 재위 기간은 책임 부재와 거짓말, 그리고 남 탓이 대부분이었다. 그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기묘사화다. 한 신하는 기묘사화 전 중종에 대해 “임금께서 선(善)을 좋아하시긴 하나 곧은 말을 들으면 반드시 자세를 바꾸고 안색이 바뀌니 그것이 매우 의심스럽다”고 했다.
중종의 책임감 없는 태도에는 형 연산군이 쫓겨났던 경험이 배어 있다. 연산군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다 조선 최초의 반정인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중종은 자기 안위를 지키는 것으로 재위 기간을 보냈다. 끝없는 책임 부재와 남 탓은 역설적으로 형의 몰락이라는 강렬한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종의 ‘한계’를 보여준다. 중종은 형 연산군의 폐위라는 강렬했던 경험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이 중종의 발목을 잡은 결정적 경험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경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여러 번 말한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역사의 법칙이다. 문제는 특정한, 강렬한 경험에만 사로잡힐 때다. 500여 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도 이 ‘강렬한 경험’의 유령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를 둘러싼 야권 내 대응에서 ‘강렬한 경험’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김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가 범법행위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검찰 수사로 밝혀질 일이다. 그의 투자를 대선자금과 연루시키는 여당의 의혹에는 근거부터 대라는 지적을 해야 한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 직무를 수행하는 중에 수차례 가상자산 거래를 했고, 법률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가상자산 공개를 하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게 문제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징계가 임박하자 탈당했고, 잠적 직전엔 ‘검찰의 기획수사’를 주장했다.
김 의원의 행동은 당내 일각의 옹호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파장을 낳고 있다. 범법행위를 하지 않은 특정인의 행위를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다. 이것이 집단 정서로 이어지면 정치 사안이 된다. 친이재명계 강경 지지자는 친이재명계인 김 의원을 옹호했고, 그를 비판한 민주당 청년 정치인들에게 ‘문자 폭탄’을 던졌다. 당내 일부 정치인은 “도덕적 문제인 것처럼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 사안은 공직자로서 적절한 처신을 했느냐의 문제지,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 문제를 ‘도덕’의 프리즘으로 보려는 사고방식은 ‘우리 편이면 이해해야 한다’는 진영논리의 발현으로 해석하기 쉽다.
문재인, 조국, 이재명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치인에 대한 일부 극단적 지지층의 ‘묻지마’ 지지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못미’(지키지 못해 미안해) 심리가 큰 원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지못미’ 정서가 말 그대로 2단계의 ‘묻지마 지지’로 표출됐다”며 “2단계가 심해진 3단계에서는 2단계에서 추앙했던 인물을 비판하는 사람, 세력들은 모조리 악마화된다”고 말했다.
중종의 재위 기간, 조선왕조는 변화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이 필요했다. 여러 비판이 있겠지만 조광조에 대한 안타까움이 존재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그 시대의 요청을 중종은 40년 가까이 허송세월하며 날려보냈다. 강렬했던 경험이 결과적으로 ‘독’으로 작용한 사례다. 결국 변화하지 않은 조선왕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맞게 된다. ‘경험’에 사로잡히느냐, ‘경험’을 통해 발전하느냐, 500년 뒤 한국 정치에 묻는 ‘역사’의 질문이다.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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