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 음력 8월26일. 태조 이성계는 ‘삼봉 정도전이 왕자를 죽이려다 계획이 누설되어 죽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받았다. 정안군 이방원의 시각으로 작성된 ‘제1차 왕자의 난’ 보고서였다. 모든 것이 끝나고 왕의 최종 결재만 남았다. 요식 절차였다. 이성계는 보고서에 서명한 뒤 “어떤 물건이 목구멍 사이에 있는 듯하면서 내려가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성계는 이날 내내 자신이 왜,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드라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현대의 인식 속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욕심 없는 왕으로 인식되곤 한다. 실제 기록에서 이성계는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전장을 누볐고 북으로는 몽골, 남으로는 일본 등 다양한 군대와 맞서 싸운 용장이었다. 가별초로 불리는 사병집단을 거느렸고 신상필벌로 부하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 능숙했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1380년의 황산대첩 때에는 직접 왜구와 맞서 싸웠고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장군으로서의 이성계는 자신만만하고 야심 넘치는 태도로 부하의 신뢰를 얻었다.
이성계는 국왕으로서도 똑같이 행동하려 했다. 중요한 국가 대사는 자기 생각대로 처리했다. 세자로 이방원이 아닌 막내아들 이방석을 지목한 것도 그렇고, 다수 반대를 물리치고 기어코 한양에 새 도성을 지은 것도 그렇다. 왕씨 일가 남성을 숙청할 때도 최종 재가는 이성계가 내렸다. 정도전을 비롯한 소수 신하에게 권한을 몰아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신뢰하는 부하에게 믿고 맡긴다는 장군으로서의 경험이 반영된 조처였다.
이 경험이 이성계의 발목을 잡았다. 정도전은 왕조의 설계자였고 그가 만들거나 구상한 제도는 새 왕조에 걸맞은 진화된 방안이었다. 현실화하는 과정이 문제였다. 정도전의 추진방식은 급진적이고 저돌적이었다. 정도전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정적을 만들었다. 그 안에는 종실과 왕자들, 고려시대 구귀족들 그리고 이들을 규합하는 이방원이 있었다. 정도전의 동지 남은은 이방원에게 죽기 전 “정도전은 남에게 미움을 받은 까닭으로 참형을 당했다”라고 말했다.
정작 이성계는 이 ‘미움’을 인식하지 못했다. ‘장군’ 이성계가 믿는 사람의 지시니 다들 불만이 있더라도 따를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제1차 왕자의 난에선 이성계를 충심으로 따랐던 가별초 집단 내부에서도 이방원을 따르는 동조자가 나왔다. 정도전은 고립당했고, 살해당했다. 단 하루 만에 정도전 제거와 보고서 작성, 세자 방석의 숙청이 이뤄졌다. 이방원이 규합한 반정도전 세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게 해준다.
이성계는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의 세계에서는 장군의 명이 곧 법도지만 다양한 세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정치에서는 지도자의 명령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그것이 그의 실패 원인이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남을 다스리는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경험의 함정’이다. 과거 경험에 발목을 잡혀 변화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이 현재 능력을 담보하지 않는다. 역사는 강렬한 성공의 순간을 맛본 사람들이 성공으로 인해 실패하는 사례를 자주 보여준다.
최근 ‘검찰 공화국’ 논란에서도 이 함정의 그림자가 도사리는 것 같다. <한겨레21> 보도(제1455호 ‘윤석열 정부에 검찰 출신 136명 들어갔다’)를 보면, 윤석열 정부에 검찰이나 검찰 수사관 등 전·현직 검찰 공무원이 136명 있다고 한다. 정부 내 검사나 검사 수사관이 많이 들어간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 특정 집단이나 대통령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정권에 들어가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당장 전임 문재인 정부 때도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부 진출로 야당이 비판했다. 권력자가 특정 세력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면서 권력을 운용하는 건 인간사회의 보편적 현실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도’다. 기존 검사 출신이 자주 낙점되던 법무부를 넘어 대통령실의 핵심 요직과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가정보원의 기획조정실장도 검사 출신이 기용됐다. 검찰과 함께 국가 수사를 총괄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검사 출신이 기용되려다 아들의 학교폭력 대응 의혹으로 낙마했다. 금융정보를 다루는 금융감독원장도 검사 출신이며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부 권력의 핵심이 같은 경험,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로만 채워졌다.
이 행보는 4년 전인 2019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서 했던 첫 번째 인사의 흐름과 유사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특수부 출신 인사들로 요직을 채웠다. 서울중앙지검 1·2·3차장은 전부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과학수사부장(이두봉), 공안부장(박찬호), 반부패·강력부장(한동훈)으로 임명됐다. 언론은 당시 고검장·검사장 승진자 18명 중 공안통으로 분류할 만한 검사는 한 명도 없다고 보도했다. 특수부의 전성시대였다.
믿을 만한 특정인, 특정 세력에 힘을 모아줘 성과를 낸다는 사고방식 자체는 마냥 틀리지만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수사로 성과를 내는 ‘서초동’에서는 이런 성과 지상주의도 이해받을 때가 있다. 검찰 내부 특유의 ‘검찰 지상주의’ ‘검사동일체’ 원칙도 이런 인식에서 나온다. 하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소수 세력에 힘이 쏠리면 성과가 나기 이전에 뒤탈이 나기 쉽다. 정치는 결국 ‘다수의 동의’로 권력을 운용한다. 정치에서 다수의 동의를 얻기 어려우면 그 세력의 의도가 선하더라도 문제가 된다. 문명사회에서 인간은 이 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600년 전 조선왕조 창업주는 자신의 선택이니 다들 따를 것이라 생각했고 정도전의 방책은 국가를 발전시키는 계책이라 굳게 믿었다. 그 결과는 아끼던 신하의 피살과 가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었다. 처한 상황이 달라지면 때로는 자신의 성공도 달리 인식해야 한다는 것. 역사의 또 다른 가르침이다.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역사와 정치 평행이론: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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