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정의당의 최전선은 불평등·기후위기·차별

사회 모순 해결할 분명한 방향 제시하고 진보세력과 연합해 구심점 키워야
등록 2022-06-28 10:40 수정 2022-06-29 01:49
정의당 안팎 인사들은 지역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게 당의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정의당이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가운데 강원도에서 정의당 최초 선출직 기초의원이 탄생했다. 윤민섭 춘천시의원 당선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정의당이 텔레비전에서는 보이는데 지역주민 옆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과 수다 떨듯 진보 얘기를 하고 주민이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윤 당선자의 유세 모습. 윤민섭 제공

정의당 안팎 인사들은 지역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게 당의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정의당이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가운데 강원도에서 정의당 최초 선출직 기초의원이 탄생했다. 윤민섭 춘천시의원 당선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정의당이 텔레비전에서는 보이는데 지역주민 옆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과 수다 떨듯 진보 얘기를 하고 주민이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윤 당선자의 유세 모습. 윤민섭 제공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담한 패배를 겪은 정의당은 2022년 6월12일 이은주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세 명의 비대위원을 선임하고 중앙당사를 이전하기로 했다. 당 바깥의 목소리를 듣고 혁신 과제를 도출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8월 임시당대회까지 정의당은 당을 전면 쇄신하는 일에 몰두할 예정이다.
정의당에, 여전히 새로운 길이 있을까. 정의당 위기의 원인을 진단한 지난호에 이어, 정의당이 나아갈 길 등 못다 실은 이야기와 함께 이은주 비대위원장 인터뷰, 진보당 등 다른 진보정당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_편집자

정의당에 새로운 길이 있을까.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한 정의당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재창당’ ‘전면적 쇄신’ ‘비례의원 총사퇴’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구체적인 그림은 제각각이다. <한겨레21>이 6월7~16일 만나거나 전화로 취재한 30명가량의 정의당 안팎 인사들은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는 여전히 필요하며 당이 나아갈 길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3정치 영역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한국 정당정치에 대해 흔히 ‘양당제의 구심력이 강하다’고 한다. 정의당 같은 제3정당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정의당의 지난 10년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존재 필요성은 여전하다.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운동대책본부장을 맡은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2022년 대선·지방선거의 결과가) 우리 사회가 미국 같은 양당제로 가자거나, 진보정당의 존재가 불필요하다는 유권자의 진지한 판단이라 예단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양당정치가 여러 사회문제나 계급·계층을 분할해 대표하는지 의문이며, 제3정치 세력 존재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새정치’라는 다소 모호한 이념을 가지고 버텨온 안철수는 결국 특정 정당으로 쏠려갔지만, 안철수가 사라진 제3정치 영역이란 커다란 땅이 남았다. 정의당에는 이 땅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는 대표주자로 서서 여기를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남았다”고 말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도 “‘진보정당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로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위기나 전쟁, 불평등, 팬데믹 같은 미래 의제가 즐비하다. 어떤 국가를, 어떤 사회를 만들지, 시민의 주권과 안전, 가치는 어떻게 담보할지에 대해 진보의 목소리가 여전히 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당이 진보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김병권 전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미국 민주당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민주당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도 끌어안지 않나. 활동을 보장하고 그 수준의 정치를 할 수 있게 한다. 반면 한국의 민주당은 계속 우클릭 하면서 (<21세기 자본>을 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말대로 사실상 ‘브라만 좌파’화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1970년대까지 주로 노동자계급을 지지 기반으로 삼았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당들이 점차 고학력·고소득 엘리트 진보주의자를 대변하게 된 상황을 피케티는 “브라만 좌파로 변질했다”고 말한 바 있다.

진보의 무대가 될 수 있는 마을공동체

진보정당이 여전히 필요하다면, 누구를 대변해야 할까.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표방했던 ‘노동자·농민·빈민의 정치세력화’라는 진보정당의 존재 의의는 여전히 유효할까. 최근 주목받는 젠더정치와 세대정치는 어찌해야 할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정당 지지율에 기대어 국회 내 비례의석 확보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확고한 지역적 기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의당 강령엔 선거제도 개혁이 제1어젠다처럼 돼 있다. 여러 사회 과제를 풀려면 정치제도를 먼저 개혁해야 한다(양당제→다당제)는 것인데, 그렇게 만든 ‘룸’(제3정당 영역)이 있어도 시민들에게 유의미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면 그 룸은 우리 것이 아니게 된다. 국민의힘이 ‘탄핵의 강’을 건너고, 민주당이 ‘조국의 강’을 건너야 하듯, 정의당은 ‘비례제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권 전 소장은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열 무대로 대도시에 주목했다. 그는 “2010년대를 지나 그나마 사람들이 모이고 활동했던 곳은 서울, 수도권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 커뮤니티와 마을공동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같은 사회적경제 활동이다. 정의당이 지금이라도 이 영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6·1 지방선거에서 서울 마포구 구청장 후보로 출마한 조성주 전 정의당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은 “마포에 출마한 배경에 그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포가 “여성 1인 가구와 엘지비티(LGBT·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많고, 전통적 제조업이 아닌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 자영업자가 혼재된 곳”이라며 “그런 곳에서 진보정당의 지역적 모델을 만드는 것이 곧 정의당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작업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통적 진보정치가 주력하는 노동에서 비정규직 밖의 노동과, 정체성 정치 영역의 다양성을 교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1418호에서 짚었던 정의당의 문제 중 하나는 노회찬·심상정을 넘어서는 2세대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 거의 20년째 세대교체가 되지 않아 인적 재생산이 막힌 탓이다.

조혜민 전 정의당 대변인은 “당 외부에서 흔히 정의당은 인물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정말 문제는 인물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그들에게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내엔 서울 관악구 구의원을 한 이기중(42)이나 이번에 마포구청장 후보로 출마한 조성주(44) 같은, 저 사람이 만약 당직이나 공직을 맡는다면 잘했을 텐데 싶은 사람이 많다. 단지 당의 힘이 작다보니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기회의 폭도 작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장혜영·류호정이 필요하다

정의당의 전직 국회의원 다수가 당을 떠난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부 인물을 키워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창당(2012년 10월) 이후 제19·20대 국회의원을 한 사람이 모두 11명이지만, 여전히 당에 남아 활동을 이어가는 이는 고 노회찬 의원을 제외하면 심상정 의원과 박원석 정의당 고양을 지역위원장, 이정미 정의당 인천 연수구 지역위원장 등 3명뿐이다. 나경채 전 대표는 “한 사회의 비전을 논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는 원래 쉽게 만들어지지 않지만, 정의당은 더 척박한 구조”라며 “(지금 상대적으로 부각된) 류호정 의원이나 장혜영 의원의 경우 여러 부침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겠지만, 당으로선 이들을 성장시키고 키워야 할 의무가 있다. 2030세대인 이들의 창창한 가능성을 재단하고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리기엔 지난 2년의 의정활동은 지나치게 짧다”고 말했다.

제로그라운드에서 다시 시작하는

진보정당이 여전히 필요하고, 대변해야 할 이들이 존재하고, 대변할 인물이 있다면, 정의당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정종권 전 진보신당 부대표(유튜브 <편파TV>와 팟캐스트 <붉은오늘> 진행자)는 “지금의 상황은 노무현 정부 직후와 똑같다. 당시 (민주노동당에서) 내부 분파 투쟁이 심화되고 민주당 정부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가 사라지면서 2007년 대선에서 역대 최악의 참패를 했다. 민주노동당은 결국 분당까지 갔다. 노무현 정부 5년, 문재인 정부 5년을 그렇게 보낸 거다. 윤석열 시대에도 (민주당과 함께 가는) 민주대연합, ‘반윤석열 연합’을 하자는 유혹이 있을 텐데 또 그렇게 갈 것인가. 민주당과 결별한 독자 행보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교훈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당면한 구조적 과제인 불평등과 기후위기, 차별에 진보정당이 제대로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성주 전 실장은 “이제 사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당의 분명한 노선으로 천명할 시기가 충분히 됐다고 본다. 다만 단순히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로의 회귀보다는 사민주의 다음 노선, 사민주의 플러스알파여야 한다. 전세계가 동시에 당면한 노동시장과 산업의 변화, 기후위기 같은 문제에 한국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등 개별 의제에 집중한 다른 진보정당들과의 통합이나 연대 필요성도 제시됐다.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은 “반자본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하게 얘기하는 세력을 다시 모으는 작업을 아주 처절하게, 제로그라운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김병권 전 소장도 “적(불평등)·녹(기후위기)·보(젠더와 차별) 구조를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과거 스웨덴 사민당도 분배 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민주의를 하면서 녹색과 젠더를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흡수해갔다. 우리 진보정당은 그간 소득분배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이제 기후위기와 차별 철폐 같은 의제도 말로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정의당이 가진 조직 자원만으로 힘들다. 녹색운동이나 페미니즘정당 운동을 했던 힘을 수평적으로 통합하는 액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