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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 없는 검찰의 ‘여론전 다걸기’

평검사들은 19년 만에 대표회의, 검사장들은 이례적 실명 인터뷰 나서며 수사권 사수 총력
등록 2022-04-23 11:15 수정 2022-04-23 11:15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에 참여한 검사들이 2022년 4월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에 참여한 검사들이 2022년 4월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를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자 검찰 내부에선 반발이 커졌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2022년 4월14~15일 박광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잇달아 찾아가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설득전을 폈다. 그러나 민주당은 4월15일 검찰 수사권 폐지를 뼈대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오수 총장은 4월17일 ‘사퇴’라는 초강수를 던졌고,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했다. 김 총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 “검찰 수사 공정성 확보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검찰 수사권을 없애되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를 부활하는 방법이 타당한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김 총장은 면담 뒤 ‘사퇴’ 의사를 철회하고 다시 국회 쪽 설득에 나섰다.

“범죄방치법” 목소리 높인 검사들

평검사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4월19일 평검사 207명이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수완박 법안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 전국의 검찰청에서 대표로 보낸 평검사들은 이튿날 새벽 5시까지 10시간에 걸쳐 난상토론을 벌였다. 전국 평검사 대표들이 한곳에 모여 회의를 연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검찰 기수를 파괴하는 인사 방침을 밝혔던 2003년 이후 19년 만이다.

전국 검찰청 평검사 대표들은 4월20일 입장문을 내어 “검수완박 법안은 검사의 두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어 범죄는 만연하되 범죄자는 없는 나라를 만들고 힘없는 국민에게는 스스로 권익을 구제할 방법을 막아 결국 범죄자들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고통만을 가중시키는 ‘범죄방치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검수완박’이 되면 △검사가 서류만 보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한계에 부딪혀 억울한 사법 피해자를 양산할 위험 증가 △검사의 인권보호 기능 박탈 △국민이 불법적 강제수사에 노출되는 현실적인 위험 발생 △부정부패 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력 약화 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개혁 논의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검찰이 어떤 식으로 자성해야 할지에는 입을 닫았다.

직접수사를 지휘하는 일선 검사장들도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 특수통 검사인 이원석 제주지검장은 4월17일 <한겨레>에 ‘어떤 중학생의 죽음’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검사도 기소를 결정하려면 먼저 수사를 통해 팩트를 체크해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가 흔들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 의심이 남아 있는데도 직접 보고, 듣고, 수사해보지 않고서 남이 만든 서류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기소를 결정할 만큼 나는 명민하지 못하다”고 썼다. 대검 대변인을 지낸 김후곤 대구지검장도 연일 언론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다. 현직 검사장들이 공개적으로 실명 기고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이슈가 된 ‘가평 계곡 살인 사건’ 등의 사례를 들면서 ‘검수완박’ 법안을 반대하는 여론몰이에도 나섰다. 인천지검은 4월17일 ‘가평 계곡 살인 사건’과 관련한 입장문을 내어 “검찰의 직접수사로 계획적 살인 범행을 입증했다.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기소해 무죄 판결을 받거나 증거부족 무혐의 처분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의자들을 도주 4개월 만에 검거한 것을 단순히 검찰의 공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이 재수사해 살인 혐의를 밝혀냈고 검찰이 보완수사해 추가로 다른 2건의 살인 혐의를 밝혀낸 검경 공조 사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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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공조 성공 사례도 ‘아전인수’ 급급

애초 이 사건의 피해자가 숨진 2019년 6월 당시 가평경찰서는 단순 변사사건으로 ‘내사종결’ 의견을 냈고, 검찰도 그대로 수사지휘를 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유족 지인의 제보를 받은 일산 서부경찰서가 피의자들에게 살인과 보험사기 미수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2022년 4월18일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최초 가평경찰서는 변사자 부검, 주변인과 보험 관계 조사 뒤 명확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내사종결했지만 한 달 뒤 일산 서부경찰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해 살인 혐의를 밝히고 송치했다. 이후 검찰에서 추가 혐의를 발견해 수사 중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검찰 쪽은 “일산 서부경찰서가 피의자 이씨 등 3명을 살인 등 혐의로 송치했지만 결정적인 물증은 없는 상태였고 피의자들도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있어 그대로 기소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고양지청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지검은 피의자가 피해자의 생명보험금 8억원을 타내려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보험 실효를 되살린 사실을 파악해냈다. 피의자 휴대전화 속 메신저를 복원해 복어 독을 이용해 피해자를 살해하려 한 사실 등 살인미수 혐의 2건을 추가로 밝혀낸 것도 검찰이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이 때아닌 검수완박 반대 근거로 사용되면서 검경이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며 “두 기관이 상호보완해 진실을 밝혀낸 공조 사례”라고 평가했다.

대검 형사부와 인권정책관실은 4월20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검수완박 법안의 문제점을 설명하면서 ‘제주 중학생 살인 사건’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이 사건은 사귀던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남성이 연인의 중학생 아들을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공범들이 서로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보완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냈다는 게 검찰 쪽 설명이다. 대검은 ‘정인이 사건’ 역시 검찰의 통합심리분석 등 추가 수사가 있었기 때문에 정인이 양모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대검 형사부는 4월19일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 여러분께 이런 피해가 생깁니다’라는 제목의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이 통과되면 발생할 피해를 13가지 사례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경찰이 고소장을 반려하거나 접수를 거부하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대화 내용까지 자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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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친인척 간에 돈 안 갚는 정도로는 사기가 안 되어서 고소장 안 받아준대요. 제 노후자금을 다 잃게 생겼습니다.’(피해자)

‘죄송합니다. 검찰은 수사권이 없어서 고소장 접수도 못합니다. 다른 경찰서에 가시거나, 해당 경찰서 다시 가셔서 사정 말씀하시고 접수해달라고 얘기해보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검찰)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21년 10월 개정된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50조를 보면 고소·고발 사건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거나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등에 해당하면 고소인·고발인의 동의를 받아 반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 동의가 없으면 고소를 반려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여론전보단 공정수사 대책 내놔야”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잘한 사건도 수백 가지, 경찰이 잘한 사건도 수백 가지 있는데 ‘가평 계곡 살인 사건’ 같은 특정 사건을 놓고 검수완박의 찬성 또는 반대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 논의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검찰이 해야 할 일은 특정 사건으로 여론전을 펼칠 것이 아니라 수사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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