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복은 있나보다.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분리 입법을 민주당 당론으로 정하면서 시기와 방법에서 큰 우려를 받던 차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난데없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이라는 큰 날개를 달아줬다. 명분을 안겨준 셈이다.
한동훈 후보자는 채널에이(A)와 검찰 간 ‘검언유착’ 의혹의 핵심 피의자였으나 증거로 쓰일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감추고 버티다 최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두말할 필요 없는 윤 당선자 최측근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탄압받았다며 윤 당선자가 독립운동가에 빗댈 정도였으니 ‘오기 인사’ ‘보복 인사’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은 명분도 방식도 못난 면이 없지 않다. 검찰총장 출신 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말짱 도루묵이니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처리해야 한다고 갑자기 ‘속도전’을 폈다. 전임 정권에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씌울 것이라는 ‘공포’도 작용했다. 피해의식이다, 자멸적 정치다 하는 비판에도 고삐를 죄는 형국이었다.
최근 검찰 행보가 이를 자극하기도 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자마자 3년이나 묵은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새삼 꺼냈다. 검찰로부터 사찰받은 것 같다며 당시 대검 부장이던 한동훈을 언급했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는 명예훼손죄로 징역 1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대통령 부인이 될 김건희씨의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는 범죄일람표를 손에 쥐고도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다 각기 따로 진행된 일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전직 대통령을 잃은 트라우마’를 일으킬 충분한 이유가 됐다. 한동훈 발탁은 끓는 기름에 물을 부은 꼴이다.
당선자가 의도한 상황은 아닐 수 있다. 한동훈이 진짜 법무행정의 적임자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상황이 불러일으킬 정치적 여파를 진짜 모른 것일까. 이러면서 통합정치는 무슨 수로 하겠다는 것인가.
무리한 ‘검수완박’ 추진도 진작 막을 수 있었다. 당선자가 앞장서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될 일이었다.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한다는 전제로 말이다. 미숙함이나 오만함에 앞서 어쩌면 두려움이 원인은 아닐까. 인사와 행보를 보면 이런 짐작도 무리는 아니다.
당선된 지 한 달이 훨씬 넘도록 야당(이 될) 쪽 사람을 만났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도 대화가 없다. 내각 인선에서도 안 위원장은 조언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한다. “종이쪼가리 말고 날 믿어달라”던 공동정부 약속마저 간단없이 저버린 것이다. 이를 두고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내면이 작으면 찔릴까 겁먹고 (안철수라는) 송곳을 쉽게 버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통합이랍시고 정작 엉뚱한 곳을 ‘비비고’ 다닌다. 난데없이 지역 순회를 하겠다며 대구·경북을 가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았다(사진). 이 자리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 “늘 죄송했다”고 했다. 무슨 짓인가. 국민의 뜻으로 탄핵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가 인용된 사람이다. 그러고도 사과는커녕 자기 억울함만 강변한 이다. 백번 양보해 인간적인 안타까움 정도를 피력하면 됐지 국민을 대표하는 처지에서 범죄자에게 머리를 조아릴 일인가.
윤석열 당선자가 ‘의외로 잘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주변에 애칭까지 구해봤을 정도다. 윤먹보, 윤머슴, (문자 그대로) 윤서방…. 그런데 청와대에 단 하루도 못 있겠다고 버틸 때부터 갸웃했는데, 자기 사람밖에 못 믿고 자기 사람들만 만나는 ‘자신 없는’ 모습을 보니 자꾸 ‘쫄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안타깝다. 밉든 곱든 우리가 5년을 맡길 금쪽같은 대통령 아닌가.
‘내 사람’ 아닌 쓴소리하는 사람을 찾아가 만나길 권한다. 어렵다면 당분간 차라리 ‘혼밥’을 권한다. 준비 없이 갖게 된 큰 권력의 무거움을 새기면서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렇게 된 이상 문재인과 반대로 하는 것 말고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말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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