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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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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차’ 따라 호남 보수 등장할까

줄어든 개발 낙수효과, 중숙련 일자리 감소 속에 무너진 ‘지역 기반 정당’ 토대
등록 2022-02-23 02:15 수정 2022-02-23 11:00

2022년 2월11일 전남 지역지 <장흥신문>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흥군 용곡마을 선착장을 찾아 지역 현안을 청취한 것을 1면에 크게 게재했다. 논조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펼치는 ‘남부전략’(1960년대 미국 공화당의 남부 주 진출)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금까지 호남은 보수정당을 외면해왔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호남 차별은 인종차별에 가까웠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정체성의 정치’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산업화에 소외돼 기업인과 중산층이 빈약했기에 보수정당의 물적 토대도 약했다. 옛 한국민주당 계열의 지주 세력과 그 후신은 5·18을 계기로 정치적 발언권을 잃었다. 거꾸로 민주당은 지역사회 구석구석 침투해, 일종의 지역 패권 정당의 지위를 다졌다. 역대 총선에서 광주의 보수정당 득표율(지역구 기준)은 1988년 10.7%에서 2020년 0.8%로 감소했다.

광주 20대 남성, 44.9% 국힘 지지

상황이 바뀐 건 20~30대가 급격히 민주당을 이탈하면서다. 1월24~25일 <남도일보> <전남매일> <뉴스1>과 리서치뷰의 여론조사(무선 85%·유선 15% 자동응답 방식)에 따르면 광주의 20대 남성이 가장 지지하는 정당은 국민의힘(44.9%)이었다. 30대 남성(20.4%)도 국민의힘 지지가 많았다. 20대 여성은 14.5%에 불과했지만, 민주당 지지율(40.5%)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호남에서 10.6%를 얻었다지만, 광주 득표율은 7.7%에 그쳤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이 ‘윤석열차’로 이름 붙여진 무궁화호 기차로 호남 구석구석을 누비는 건 대선용 전략을 넘어서서 민주당 이탈 세력을 끌어당겨, 이 지역에서 보수 유권자층을 만들겠다는 포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호남에서는 민주당, 대구·경북에서는 국민의힘에 몰표가 나왔던 이유는 지역 개발 사업과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 지역 명문고를 졸업한 재경 엘리트들의 정당이 정치권력을 잡으면, 중앙정부의 재원으로 대규모 사회기반시설(SOC) 건설 등 보답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지역 개발 사업의 효과는 줄어들고, 불평등 확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가 늘어났다. 지역 기득권과 엘리트들의 정치적 결사체나 다름없는 민주당에 호남의 젊은이들이 반발심을 가지는 이유다.

지역과 수도권 분리된 정치

전국의 포장도로는 1960년 총 100만㎞에서 1980년 1560만㎞로 15.5배 늘었다. 2000년(6730만㎞)은 1980년에 견줘 4.3배 증가했다. 그런데 2020년(9870만㎞)에는 2000년보다 1.5배 늘어난 데 불과하다. 이미 건설된 도로가 누적돼 추가 건설에 대한 효과가 줄어든 결과다. 또 대기업 사무직이나 제조업 대공장 생산직 등 중숙련 일자리들이 경제구조 고도화로 빠르게 사라지면서 지방에서 번듯한 일자리를 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새로 생겨나는 첨단산업 일자리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나아가 “여기서 돈을 벌려면 외지 출신이어야 한다. 현지 출신은 눈치 볼 게 많아서 안 된다”며 좌절감을 토로하는 젊은이들에게 지역의 엘리트(또는 기득권)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처럼 비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내 자산 불평등이 커졌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광주 아파트 중 가격 상위 20%의 평균가격은 2014년 1월 2억9300만원에서 2022년 1월 6억5900만원으로 124.3% 올랐다. 같은 기간 하위 20%의 평균가격은 7300만원에서 1억1700만원으로 59.2% 상승하는 데 그쳤다. 광주에서 2021년 6월과 2022년 1월 대형 참사가 일어난 곳에는 각각 HDC현대산업개발의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현재 8억5천만원 정도에 거래되는 ‘무등산아이파크1차’(전용 84㎡)보다 비쌀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무등일보>가 2021년 8월 청년층 불만 요인이 무엇인지 물어본 조사에서 ‘부동산 가격 및 전·월세 문제’를 꼽은 30대는 36.6%, 20대는 28.6%였다. 반면 40대는 18.2%, 50대는 17.5%에 불과했다.

중앙정치와 지역정치가 점차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주요한 배경이다. 한때는 호남과 호남 출신 이주민의 당이었지만 이제 수도권 기반 정당으로 변모한 민주당에 대한 정당 일체감이 약화한 것이다. 대신 지역정치는 독립적인 인물과 구조, 이해관계를 갖는 일종의 ‘현지화’가 진전됐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전국적인 지명도나 영향력이 약하고, 대선캠프에서 주변부에 머무른 데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이렇다보니 유권자도 굳이 민주당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지게 됐다.

지역정치의 현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있다면 대구와 광주 의원의 출신 대학 변화다. 2020년 총선에서 두 지역 모두 서울대 졸업자가 전멸했다. 대구의 경우 2000년 총선(제16대)까지만 해도 경북고-서울대 출신 고위 관료·검사·교수가 주류(55%·6명)였다. 이후 경북고 출신이 하나둘 사라지다, 2020년 총선(제21대)에는 서울대 출신이 한 명도 없다. 대신 경북대·영남대 출신은 58%(7명)로 늘었다. 광주도 2010년대 절반(4명)을 차지하던 서울대 출신이 사라지고, 대신 전남대·조선대 출신(6명)이 주를 이루었다.

지방 정치·경제 뒤바꿀 발본적 문제 제기를

호남 20~30대의 탈민주당화는 ‘87년 체제’의 주요한 구성 요소인 지역 기반 정당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지방 경제의 붕괴가 근본적 원인으로 보이지만, 각 정당은 ‘이대남(20대 남자) 보수화’나 ‘지역감정 약화’라는 레토릭(수사)을 꺼내는 수준이다. 진짜 호남과 지방 청년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방의 정치·경제를 뒤바꿀 수 있는 발본적인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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