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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단지 편의점에 오래 머무는 이유

아파트에선 공원·녹지 항유하지만 단지 밖 주민들은 공공재 부족해 삶의 질 격차 커져
등록 2022-07-04 08:51 수정 2022-07-04 22:42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도 어김없이 ‘부동산 계급투표’라는 말이 나온다. 요컨대 고가 아파트 거주자들이 부동산정책에 대한 불만 또는 탐욕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을 이탈해 국민의힘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 총선 당시 민주당의 압승을 설명하는 요인도 부동산이었다. 당시 우상호 민주당 의원(서울 서대문갑)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뉴타운이 우리에게 ‘선물’이 됐다”며 중소형 평형 위주인 뉴타운에 30~40대가 집중적으로 살면서 민주당 표밭이 됐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대개 아파트를 부동산, 즉 자산의 관점에서만 본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어떤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정치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간과한다. 2020년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집 1853만 가구 가운데 62.9%(1166만 가구)가 아파트였다. 그렇다면 아파트가 만들어낸 생활세계와 그에 따른 이해관계를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녹지율 아파트 36%인데 다세대·다가구 지역은 3%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점은 아파트가 녹지, 공원, 보행로, 주차공간 등 주거 관련 공공재를 사적으로 공동구매하는 주거 형태라는 것이다. 신축 아파트의 강점 중 하나인 넓은 지하 주차장과 현관문까지 바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추는 데 필요한 공사비는 주택 가격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커뮤니티센터라는 이름으로 독서실, 피트니스센터, 골프연습장은 물론 경우에 따라 극장이나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까지 운영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동구매에 따르는 비용이 낮아지고, 더 많은 시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밖 거주민은 주거 관련 공공재가 부족하다. 2020년 서울연구원이 낸 보고서(‘다세대·다가구 주택지 재생을 위한 슈퍼블록단위 통합·연계형 가로주택정비사업 추진 방안’)에 따르면 대규모 다세대·다가구 주택 지역에서 녹지 면적은 3.4%에 불과했다. 반면 아파트의 녹지율은 35.8%에 이른다. 다세대·다가구 주택 지역은 1개 택지당 주민 주차구역이 214대인데, 평균적으로 도로를 점유한 차량은 400~500대에 달한다. 적어도 가구당 1대 이상 주차공간이 있는 게 상례인 아파트와 대비된다. 거꾸로 인구밀도는 아파트(헥타르당 603명)가 다세대·다가구(436명)보다 38.3% 더 높다.(표1 참조)

주거 공공재의 차이는 삶의 질 격차로 직결된다. 서울 송파구의 편의점 세븐일레븐 파크리오점과 송파중앙점 이용 행태를 분석한 이지우씨의 논문(‘아파트 단지와 다세대 및 단독주택 밀집 지역의 편의점 사용 행태와 공간 인식에 관한 연구’,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 2018년)은 이를 잘 보여준다. 6864가구 대단지 아파트에 있는 파크리오점은 일종의 주민 휴게시설이다. 저녁 7시 이후 이용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4%가 30분 이상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가족·친구들과 편의점에서 산 음식물을 먹으면서 환담을 나누고 휴식을 취한다. 보행로가 넓고 차량 통행량이 적은데다, 아파트 내부 녹지가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다세대주택 밀집지에 있는 송파중앙점은 간단한 식사와 생필품을 파는 슈퍼마켓에 가깝다. 대부분의 이용자가 물건만 사가고, 야외 테이블 이용자 중 30분 이상 체류자는 37.8%에 불과하다. 테이블 이용자 중 35%는 혼자다. 파크리오점(12.8%)의 약 3배 수준이다. 좁고 차량 통행이 많은 길가에서는 편하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끼리 살면서 형성된 ‘능력주의’

이런 주거 공공재 격차는 강력한 아파트 선호로 귀결된다. 2020년 6개 광역시의 아파트 비중을 평균하면 72.1%였다. 경기도도 70%다. 땅값이 너무 올라 1970년대 조성한 다세대·다가구 주택지를 재개발하지 못하는 서울만 예외적으로 58.8%에 불과하다. 전국 250개 시·군·구(세종특별자치시 포함) 가운데 20곳에서 아파트 비중이 80%가 넘는다. 경기 용인 수지구(93.0%)와 수원 영통구(91.4%), 인천 연수구(91.2%), 경남 창원 성산구(91.1%) 등에선 새로 개발된 도시는 아파트 외 주택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표2 참조)

문제는 공공재를 사적으로 공동구매해 살아가는 게 일반화됐을 때 나타날 생활세계다. 아파트 주민들 처지에서 외지인이나 임대주택 거주자가 공공재를 무임승차해 쓰는 걸 막는 것은 어찌 보면 경제적으로 당연한 선택이다.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것도 합리적인 ‘균형’이 된다. 한승혜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원이 2002~2016년 수도권을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가 늘어날수록 소득별 주거지 분리가 심화됐다.(‘대규모 재개발에 따른 소득계층별 주거 분포의 변화에 관한 연구’, 2021년)

비슷한 사람들끼리 사는 공동체, 특히 상위 중산층이 모여 사는 곳에서 ‘투명한 규칙대로 시험을 치르고 그 성적대로 자원을 배분하자’는 한국식 능력주의가 싹트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19년 펴낸 자서전에서 ‘공정한 경쟁’을 배운 장소로 지목한 곳은 서울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에 있는 월촌중학교였다. 그는 “적어도 겉보기에는 비슷했어요… 친구들끼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어요”라고 술회했다.

대단지 아파트 주민 대변한 민주당

민주당 정치인들은 아파트 대단지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2018년 3월 목동을 지역구로 삼는 황희 의원을 비롯해 박영선, 전해철, 최인호, 설훈 등 실세 중진 의원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거슬러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완화하자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본인 지역구의 집값을 올려야 한다는 계산에 따른 행위다. 유권자 처지에서 민주당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이 없고, 아파트의 압도적인 주거 품질 우위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고, 주거난의 원흉으로 민주당을 지목한 것은 나름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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