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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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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케어가 드러낸 ‘공동구매’ 복지의 한계

시민의 갹출로 운영하는 공공재는 압축성장의 산물
중산층 옅어지고 이해관계 달라져 갈등 커질 가능성
등록 2022-12-28 19:25 수정 2022-12-29 10:40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경제와 사회복지 시스템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공동구매’라 할 수 있다. 주택·보육·의료·교육·교통 등 공공재 성격이 강한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 시민들의 갹출로 조성된다.

공동구매 방식은 여러 가지다. △따로 수익을 낼 길을 마련해주는 공기업·공공기관 △사회서비스 공급에서 민간 참여 장려 △재정 지출 대신 사회보험 의존 등이다. 세금을 거둬 재정을 투입하는 건 최소한으로 억제되고, 공동구매 방식 도입·유지에 정부의 행정력이 결정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동구매 사회는 압축 성장의 부산물이다. 1970~1980년대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은 조세·재정 역량이 취약했다. 그런데 중진국 대열에 오르면서 삶의 질 개선 요구가 분출했다. 정부는 재정 투입을 억제하면서 보편적인 서비스 공급이 가능한 제도를 땜질식으로 만들어야 했다.

한국에 유독 공기업이 많은 이유는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가 2020년 국회 예산정책처에 제출한 보고서(‘해외 주요국 공공기관 평가 및 관리방안’)에서 중앙정부 산하 공기업·공공기관 수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363개로 일본(120개)의 3배에 달했다. 미국(67개)은 물론 스웨덴(43개), 프랑스(63개)도 그 수가 40~60개에 불과했다. 영국(256개)만 그나마 한국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다른 선진국의 공기업이 적은 이유를 박 교수는 미국처럼 아예 시장에 맡기거나 아니면 스웨덴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합쳐진 대한주택공사(주공)다. 급격한 도시화·산업화로 서민 주거 수요가 늘어나자 정부는 주공이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하고 이를 민간에 판매해 나오는 수익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짓도록 했다. 이때부터 주공이 임대주택 공급은 뒷전이고 ‘집 장사’에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2010년 이후 정부가 임대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면서 관련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이기도 하다. 2021년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온 LH의 각종 문제는 필연적인 결과에 가깝다.

사회복지서비스는 민간이 공급을 주도한다. <보건복지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노인 대상 사회복지 시설 1만3940곳 가운데 정부가 직영하는 곳은 95곳으로 0.7%에 불과했다. 정부 위탁 운용도 6.5%에 그친다. 나머지 92.8%의 시설을 민간이 운영한다. 아동 대상 시설은 87.8%, 장애인 대상 시설은 81.2%가 민간 운영이다. 정부 직영 비중은 각각 1.8%, 0.3%에 불과하다. 그나마 어린이집은 사정이 나아서 전체 이용자의 22.7%가 국공립 시설에 다닌다. 해당 시설 다수가 위탁 운영되지만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하는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사회지출(SOCX)은 2016년 10.2%였다. 그 가운데 53.8%는 가입자의 공동구매로 운영되는 사회보험 지출이었다.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회복지 지출은 OECD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낮은 편이지만, 사회보험 지출 비중은 높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보건·의료 시스템이 건강보험 위주이고 노후 보장도 국민연금 의존도가 높은 걸 그대로 반영하는 셈이다.

‘문재인 케어’ 논쟁과 공동구매의 한계

문제는 고도성장과 풍부한 생산가능인구를 전제로 짜인 공동구매 방식이 저성장·고령화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위 중산층에 맞춘 공동구매 방식도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됐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고 이동성이 낮아지면서 ‘중산층 만들기’를 의도한 공공재 공급이 정치적으로 어려워졌다. 또 기본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대신 고급 서비스는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 추가 비용을 내고 쓸 수 있도록 하는 현행 공동구매 방식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문재인 정부의 의료보장 확대 정책을 윤석열 정부가 포퓰리즘이라 공격하면서 촉발된 논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건강보험은 도입 이후 줄곧 보장 범위가 확대됐다. 그런데 이제 ‘축소’가 쟁점이 된 건 2023년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이 임금(보수월액)의 7.09%로 오르는 등 가입자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 운영이 중단되는 등 가급적 필수 의료 공급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된 현 의료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중산층 붕괴로 사회보험 기반 흔들린다

재정 확대는 쉽지 않다. 김사현 대구대 교수 등이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이용해서 분석한 증세에 대한 태도 추이(‘한국인 복지태도의 변화양상’, 2021년)를 보면 2013년 7점 만점에 4.46점이던 ‘증세 찬성’ 여론이 2016년 4.23점, 2019년 4.01점으로 하락했다. 2020년 연세대 복지국가센터 조사에 따르면 복지를 위한 증세에는 찬성하지만 법인세(53.7%)나 재산세(43.3%) 인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주였다. 소득세 인상은 15.7%, 소비세 인상은 13.7%만 동의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한국의 사회보장체제에서 세 집단이 서로 다른 여건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한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상위 중산층은 안정적 일자리와 소득을 바탕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한편 공적 사회보험이 이를 보완한다. 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공적 사회보장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이나 영세자영업자는 엄격한 수급 조건이 적용되는 공공부조만 바라본다. 공적 사회보험의 기반이 흔들리는 방식을 살펴보면 첫 번째 집단과 두 번째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두 번째 집단의 불만이 쌓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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