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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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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는 전국에 있다

수익성 낮은 사업도 지자체 보증으로 싼값에 자금 조달
단체장 치적쌓기용 개발사업이 지방재정 위기 부추겨
등록 2022-11-10 16:12 수정 2022-12-09 02:44
2022년 5월 개장한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한겨레 박수혁 기자

2022년 5월 개장한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한겨레 박수혁 기자

2022년 9월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춘천시 중도에서 ‘레고랜드를 개발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부실이 심해 회생절차를 밟겠다’고 하자 금융시장은 유동성 경색 위기를 겪었다. 채권시장은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철회하리라 봤고, 실제로 일주일 뒤 부도 처리됐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해 우량한 것으로 간주됐던 채권도 원금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금융시장은 공포에 빠졌다.

금융기법 활용해 ‘영끌’하는 지자체

레고랜드 사태는 김 지사가 금융시장의 냉혹한 작동 방식을 모르고 정치적 득실을 앞세워 벌인 일회성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 지자체가 잘 발달한 한국 금융시장을 활용해 재정 한도를 초과해 돈을 끌어다 쓰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논란이 됐던 민간투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자본의 탐욕’이 끼어들 수 있었던 건 어떻게든 도로를 짓고 터널을 뚫어야겠다는 ‘지자체의 야심’이 컸기 때문이다.

헝가리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너이가 제시한 ‘연성예산제약’이란 개념은 다소 낡았지만 레고랜드 문제를 보는 데 적절하다. 코르너이는 예산이 엄격하게 주어지지 않는 기업은 비효율적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익 극대화보다 생산량을 늘리는 추가 예산 확보에 골몰하게 되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크게 세 방법을 써서 레고랜드 사업에 돈을 끌어다 썼다. 먼저 지자체가 지분을 갖는 주식회사인 출자기관 설립이다. 출자기관은 지자체가 지분 일부만 가진 민간회사다. 사업 진행이나 자금 조달에서 지자체의 자율성이 크다. 둘째는 미래 수익을 상환 재원으로 삼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법이다. 그런데 레고랜드처럼 수익성이 불투명한 사업은 투자자를 모으기 쉽지 않고 금리도 높다.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비엔케이(BNK)투자증권은 2020년 11월 연 3.1%라는 낮은 금리를 제시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 발행사로 선정됐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와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2016년 논문(‘정부의 암묵적 보증이 공기업 신용등급에 미치는 효과’)에서 공기업이 발행한 채권 금리는 같은 조건의 민간기업과 비교해 3.16%포인트 낮다고 분석했다. 암묵적 지급보증 때문이다.

싼값에 자본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 극단적으로 낮은 수익도 감내할 수 있다. 또 당장 부지를 조성하고 삽을 뜰 수 있다면 치적을 쌓고 싶은 지자체장에게는 당장 당겨올 수 있는 민간자본은 매력적이다. 오랜 사업 기간, 수천억원을 투입한 지자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한 관람객, 표류하는 추가 사업 계획처럼 레고랜드와 비슷한 일이 경남 마산로봇랜드 등에서 발생한 이유다.

지자체 출자기관 부채 10조원, 자본잠식 30곳

지자체 출자기관이나 재단법인 형태의 출연기관은 2010년대 중후반 빠르게 늘어났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지자체 출자·출연 기관 수는 2014년 540곳, 2018년 695곳, 2022년 9월 현재 849곳이다. 반면 지방공기업은 2014년 394곳에서 2022년 9월 411곳으로 조금 늘어났다.

서울시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하병규씨가 이와 관련한 기초지자체의 2010~2021년 행태를 분석한 논문(‘지방 출자·출연 기관 설립에 미치는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2022년)에 따르면 기초지자체장과 광역지자체장의 소속 정당이 같고, 기초지자체장이 정치인 출신이면 지방 출자·출연 기관이 더 많이 설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설립이 늘었다. 거꾸로 지자체 내 정치적 경쟁이 있으면 출자·출연 기관 설립이 줄었다.

지방 출자·출연 기관의 부채는 2014년 4조2천억원에서 2021년 9조7천억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그리고 2021년 말 기준 30곳은 자본잠식 상태다. 의료원 9곳과 문화 관련 재단 2곳을 제외한 21곳이 산업단지나 도시개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예탁결제원에서 받아 공개한 지자체 채권 지급보증 14건(총 9500억원)을 보면 강원중도개발공사를 제외하면 모두 산업단지 개발을 위한 출자회사다. 청주테크노폴리스(9090억원), 김해대동첨단산업단지(8530억원), 인천종합에너지(3670억원), 의정부리듬시티(3540억원), 완주테크노밸리(2610억원) 등 강원중도개발공사(2590억원)보다 부채가 많은 곳은 산업단지·도시개발 사업을 한다.

지자체가 산업단지 조성에 골몰하는 이유에 대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자체 입장에서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예전에 하던 대로 산업단지를 만들어 공장을 유치하자는 것”이라는 얘기다. 일정 규모 이하의 산업단지 조성은 지자체가 재량껏 토지용도를 변경할 수 있는데다, 내부에 공장뿐만 아니라 주택이나 상업시설을 함께 지을 수 있어 개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행정 전문가는 “지자체의 산업단지 조성 규모를 합치면 국토교통부 계획이 상정하는 적정 산업단지 규모의 몇 배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미래를 팔아 오늘만 즐긴다

아시위니 아그라왈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 교수는 2007년 미국 지방채 보증보험 회사가 무너지면서 지방채 금리가 오르자, 상수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큰 폭으로 줄었다고 2021년 논문(‘Municipal Bond Insurance and the U.S. Drinking Water Crisis’)에서 지적했다. 상수도 오염 증가의 32%가 그 때문이라는 얘기다. 중앙정부 의존도가 높은 한국 지자체의 파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향후 개발사업 실패로 재정 압박에 시달릴 지자체가 필수 분야에서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자체가 미래를 팔아 오늘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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