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아수라장 상황이 된 것은 예견된 결과다. 민주당 유권자 지지 연합이 붕괴한 상황에서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할지, 그리고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존폐 기로에 선 정의당은 이보다 점잖지만, 어떻게 쇄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진보 세력은 문재인 정부 시기 경제와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자원 배분의 양상과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고 새로운 사회적 균열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는 논의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불평등이 있다면 소비, 기회 그리고 사는 곳의 격차다. 각각 그 양상을 살펴보면 이 격차가 ‘선진국 진입’의 결과임이 드러난다.
불평등의 끝에는 소비가 있다.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소비 행위를 거쳐 사람들의 후생 격차로 나타난다. 한국은행이 2021년 10월 발표한 보고서(김찬우·김철주, ‘우리나라의 소비 불평등 추정 및 주요 특징 분석’)는 소비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비 격차는 1990년 2.9배에서 2016년 3.6배로 확대됐다. 특히 보고서는 2002~2009년 확대된 소득 불평등을 소비 격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과세자료를 이용해 추정한 상위 10%의 소득 몫(‘최상위 임금 비중의 장기 추세(1958-2013)’, 2015년)은 1999년 32.1%에서 2009년 44.4%로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중국 수요 등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기술고도화와 재무구조 개선에 성공한 결과다. 문제는 2017년 이후 대기업의 성장으로 소득 불평등이 더 심화했다는 사실이다. 홍 선임연구위원의 추가 분석에 따르면 2016년(47.4%)까지 정체됐던 상위 10%의 소득 몫은 2020년 50.7%로 커졌다.
소비 격차는 문화, 서비스, 인적자본 투자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상위 20%와 나머지 80%의 평균 지출을 품목별로 비교(도시 가구·중분류 기준)했다. ‘오락·문화 내구재’는 2010년 상위 20%의 지출액이 나머지 80%의 1.4배였는데, 2021년 11.7배로 뛰었다. ‘악기·기구’(1.6배→4.2배), ‘운동 및 오락 서비스’(2.6배→3.6배) 등도 지출액 차이가 커진 항목이었다. 또 ‘성인 학원 교육’은 2.3배에서 3.9배로, ‘학원 및 보습 교육’은 2.4배에서 2.8배로 늘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지출을 2010년과 견줘도 결과는 비슷했다. ‘어떻게 시간을 쓸 것인가’를 중심으로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됐음을 보여준다.(표1 참조)
코로나19로 대두된 문제 중 하나가 기초학력 저하다. 비대면 학습이 장기간 진행되면서 읽기, 쓰기, 셈하기 등 기초학력이 충분치 못한 아동과 청소년이 급증했다. 기초학력을 충분히 배양해야 향후 추가 교육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인적자본 투자에 따르는 수익률이 아동·청소년의 나이가 어릴수록 높다고 본다. 기초학력 저하가 향후 심각한 불평등 문제로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초학력 격차는 코로나19 유행 이전부터 컸다.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마지막으로 공개된 2011년 서울 양천구 29개 초등학교 실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보통 학력 이상’(국어·영어·수학 평균)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의 경인초등학교(95.7%)였다. 신서초·월촌초·영도초·목운초·서정초 등 목동 신시가지 소재 학교들이 95% 안팎의 비슷한 비율을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그런데 경인고속도로 신월나들목(IC) 바로 옆 신원초는 66.1%에 그쳤다. 인근 신강초(68.0%), 양원초(68.3%)도 사정은 비슷했다. 목동 신시가지에서 외곽으로 갈수록 보통 학력 이상 학생 비율이 줄었다.
사실 코로나19는 확대일로였던 기초학력 격차에 쐐기를 박은 계기에 불과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 분석 보고서를 2021년 발간했다. 부모가 고졸인 만 15살(중3)의 수학 성취도는 528점에서 491점으로 37점 하락했다. 그런데 부모가 대졸자인 학생은 565점에서 540점으로 25점 내려가는 데 그쳤다.(표2 참조) 읽기 등 다른 과목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중하위 계층을 중심으로 학력 저하 현상이 발생한 셈이다. 변수용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교수(사회학)는 “최근으로 올수록 빈곤층의 학업 성취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계층 간 학업 성취 격차가 심화됐다”(변수용·이성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교육 결과>, 2021년)고 설명한다.
중상위층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같이 주변 주거지와 분리된 ‘빗장 주거단지’(Gated Community)에 모여 사는 경향은 강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공동주택관리시스템에 관리비 공개 의무 단지로 등재된 아파트 단지(사용 승인일이 1991~2021년인 1만6430곳)를 대상으로 연도별 평균 가구 수를 계산했다. 2001~2005년 준공된 아파트 단지는 평균 560가구 규모인데 2011~2015년 650가구, 2016~2021년 705가구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일수록 내부에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기 편리하고 이웃 주민들의 등질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새롭게 등장한 불평등은 진보 진영의 전통적인 정책 처방전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심화한 주거지 분리 속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교실 안 불평등에 대해 그저 교육 공공성을 강조하거나 아파트 투기꾼을 공격하는 방식은 유권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정책 수단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일종의 ‘공급 측면 진보주의’가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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