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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보다 못한 윤석열의 중도 전략

보수·중도층 지지기반 약한 윤 대통령 매력적인 정책이나 여소야대 국회 돌파할 비전 안 보여
등록 2022-07-20 16:12 수정 2022-07-21 02:08
윤석열 대통령이 7월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월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년 6월 중순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급락은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다. 인사 실패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등 표층에 드러난 현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보수 진영의 취약한 지지 기반과 통치 역량 부족이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이너서클의 정치적 무능이 어디에서 왔고, 왜 좀처럼 교정되지 않는지 찬찬히 살펴보면 보수 전체의 문제임이 선명히 드러난다.

보수 대통령이 임기 초 지지율 낮은 이유

전통적으로 보수정당 쪽 대통령들의 임기 초반 지지율은 민주당계 정당 대통령 지지율에 견줘 낮았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의 첫 분기(취임 당시 분기 기준·18대까지는 2~3월, 이후는 5~6월) 직무수행 긍정평가 비율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50%)을 포함해 이명박 전 대통령(52%), 박근혜 전 대통령(42%)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60%), 문재인 전 대통령(81%)보다 낮았다. 부정평가 비율도 윤석열(36%), 이명박(29%)과 박근혜(23%) 세 대통령 모두 민주당계 대통령들(10%대)보다 높았다. 이는 도시에 거주하는 30~40대 대졸 화이트칼라가 주축이 된 반보수 여론의 존재 때문이다.(표1 참조)

또한 지지 기반이 단단하지 않은 대통령들은 어김없이 임기 초 지지율 급락을 경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초반 4~6개월(2분기) 만에 지지율이 40%로 급락했다. 대선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던 수도권의 중도적 중산층이 가장 먼저 이탈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대규모 시위에 직면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의 대선 당시 주력 지지층도 수도권의 중도적 중산층이었다.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롤러코스터 같은 지지율 등락을 경험한 것은 그의 지지 기반도 단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떠밀려 보수 쪽으로 넘어온 이로, 전통적인 보수층에서 일종의 비판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이 2008년 이명박 정부를 평가한 것처럼 “역대 어느 정부보다 취약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출발”했으며 “싸늘한 시선을 가진 국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분노한 대중의 사회>, 2009년)

문제는 윤 대통령이 취약한 지지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취임 이후 ‘윤석열’을 언급한 기사에서 ‘중도’라는 단어가 언급된 빈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데이터베이스에서 5월10일부터 7월11일까지 63일간 11개 종합일간지(경향신문·국민일보·내일신문·동아일보·문화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의 기사를 검색해봤더니, ‘윤석열’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는 총 2만2663개였다. 이 가운데 ‘윤석열’과 ‘중도’라는 단어가 함께 쓰인 기사 비율은 1.1%(248개)다. 취임 초 적폐 청산을 내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도’와 함께 언급된 기사 비율(1.0%)과 비슷하다.(표2 참조)

이명박 ‘동반성장’, 박근혜 ‘경제민주화’, 윤석열은?

지금까지 보수정당 쪽 대통령은 중도적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반성장’과 ‘공정사회’를 전면에 내걸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경제민주화 담론 경쟁에서 주도권을 가지려 노력했다. 박 전 대통령 취임 후 63일 동안 그를 언급한 기사 중 3.1%에서 ‘중도’라는 단어가 쓰인 이유다.

윤 대통령은 이들과 다르게 대결적인 정치구도를 짰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주요 유권자 집단이 반응할 만한 정책 의제를 던지지 않았다. 호남의 경우 지역 발전 의지는 표명했지만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나 예산 투입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장관 중 호남 출신은 이전에 서울 출신으로 소개됐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뿐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을 물리는 과정에서 20대 남성의 마음을 잡기 위한 다른 정책도 눈에 띄지 않는다. 비판적 지지층일 노년층이나 영남 지역을 겨냥한 의제가 부재한 것도 마찬가지다.

63일간의 언론 기사를 보면 ‘무능’이란 단어의 사용 비율은 1.3%로 박 전 대통령(1.2%)에 견줘 큰 차이가 없었다. ‘불통’(0.7%)이나 ‘인사 실패’(1.9%)도 전임자들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지지율 하락은 정무적인 세련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지 연합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의 귀결에 가까워 보인다.

이탈한 중도 유권자를 붙잡기 위한 정책 의제를 만들고 정치 쟁점으로 만들 역량도 현재로서 낮아 보인다. 인사는 검찰 출신이 주를 이루는 내부자 집단이, 정책은 기획재정부 전직 관료가, 나머지 자잘한 정무는 국민의힘 출신이 맡는 구조 때문이다. 주어진 일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는 있어도 창의적으로 전략을 짜고 정부와 정치권을 아우르는 캠페인을 전개할 수 없는 조직 구성이다.

6월 중순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은 세법 개정, 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편, 범부처 간 규제 조정 등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모두 법률 개정이 필요해서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것들”이라며 “정치적 전략 없이 정책만 발표하는 건 그저 ‘말의 성찬’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행정부의 선택지는 △국회의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고 행정부 고유 권한만 행사하기 △대국민 여론전을 통해 야당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협상과 흥정을 통해 야당과 합의하기 등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입법부를 파트너로 삼는 정책을 대표 상품으로 삼았다면, 여론으로 민주당을 압박할 여건을 조성하든가 아니면 물밑 교섭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대국회 전략 기조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 상황이다.

검찰·기재부가 장악한 행정부의 한계

결국 윤 대통령과 보수 진영이 그들이 비판하던 민주·진보 진영보다 국가를 잘 운영한다는 걸 보여야만 유권자의 표심 이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 급락이 보수 전체의 문제인 이유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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