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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의 경제유표

‘선진국 신화’가 잡은 민주당의 발목

윤석열 정부 잇단 실책에도 민주당 지지율 31~32% 수준
자동화로 중숙련 일자리 줄면서 민주당 유권자 연합이 흔들린다

제1439호
등록 : 2022-11-21 14:28 수정 : 2022-11-2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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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는 ‘우리도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것이다. 주류 세력 교체에 성공했다는 자신감과 보수가 주도해온 낡은 제도와 문화를 몰아내는 것이 새로운 과제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대선 당시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책을 추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선진국으로의 발전 양상은 민주당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대도시 상위 중산층이 주도하고 호남에서 이주한 중하층이 하위 파트너 역할을 맡아 형성된 민주당 유권자 연합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경제구조 변화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5년 전 대선에서 받았던 압도적인 지지율이 무색하게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것은 부동산 가격 급등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내홍 때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잇따른 실책에도 민주당 지지율이 29~33% 수준(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 전국 지표조사 2022년 8월 이후)에 머무른 데는 구조적 요인이 있어 보인다.

상위 중산층 대 나머지의 불안한 동거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대기업 노동자나 전문직을 주축으로 한 소득 10%의 상위 중간 계급(Upper Middle Class)이 부상했다. 2000년대 한국 경제가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도약을 이룬 덕분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텔레비전(TV), 휴대전화 등 주요 제품군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발돋움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이 기간에 6시그마(불량품을 제품 100만 개 가운데 3.4개 이하로 낮추는 것) 운동,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경영혁신과 피에스(PS)라는 종업원 이익 공유 제도를 도입했다. 자동차, 화학, 철강, 조선 등 다른 산업의 주력 기업들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터넷·이동통신·금융투자 등 신산업이 등장했고,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고 미국식 선진 경영 관행이 새로운 ‘표준’이 됐다.

그 결과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수출 대기업과 나머지 부문의 격차가 크게 확대됐다. 제이 송 미국 연방사회보장국(SSA) 이코노미스트,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학 교수 등은 2019년 논문(‘Firming Up Inequality’)에서 미국의 임금소득 불평등 가운데 3분의 2가 회사 간 임금 격차 확대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는데, 비슷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진 셈이다. 한국은 최상위 1% 소득 중 재산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국민 소득 중 최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이 차상위 9%와 거의 비슷하게 등락한다. 상위 중간 계급이 주로 속한 수출 대기업의 성공이 불평등을 확대하는 핵심 동인이 된 이유다.

노무현 정부 때 급격히 벌어진 불평등의 결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었다. 하지만 깊숙이 내재한 불만은 바로 다음해 대규모 촛불시위로 폭발했다.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선거에서 내리 패했다.

축소되는 중숙련 일자리
문재인 정부 시기 노동시장의 변화는 상위 중산층과 나머지 ‘뒤에 처진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다시 확대됐음을 시사한다. 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에서 2013년, 2017년, 2021년 각 하반기에 만 59살 이하 취업자 수 변화를 산업별로 살폈다. 2021년 취업자 수는 4년 전보다 67만2천 명 줄었다. 특히 제조업 고용이 34만9천 명 감소했다. 자동차(11만5천 명), 의류(5만2천 명), 전자부품(4만 명), 기타 운송장비(주로 조선업·3만 명), 금속가공제품(2만9천 명) 등에서 많이 줄었다. 2013~2017년 취업자 증가(39만9천 명) 중 제조업(10만5천 명)이 4분의 1을 차지한 것과 대비된다. 제조업 고용 감소 원인 중 하나는 기업의 적극적인 자동화다. 국제로봇연맹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로봇 가동 대수는 2009년 7만9천 대에서 2013년 15만3천 대, 2017년 27만3천 대, 2021년 36만6천 대로 급증했다.

2017~2021년 줄어든 금융업 취업자(4만1천 명 감소)처럼 사무직 일자리도 자동화 영향을 받는다. 정종우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과 이철희 서울대 교수가 2022년 9월 발표한 보고서(‘Technological Change, Job Characteristics, and Employment of Elderly Workers’)에 따르면 정보기술(IT) 투자 확대는 50살 이상 고령 사무직 퇴직 확률을 3.62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새 일자리도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데이비드 오터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 등은 업무에서 반복 수행 비율이 높고 자동화의 영향을 받기 쉬운 중숙련 일자리가 IT가 발전하면서 크게 줄어든다고 주장했는데, 지난 몇 년 한국 노동시장에 잘 들어맞는다.

권혁용 고려대 교수는 2022년 9월 발표한 논문(‘한국인은 왜 재분배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가? 설문실험 연구’)에서 설문조사 응답자에게 본인의 경제적 계층 지위를 알려줬을 때 훨씬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답을 내놓았다고 보고했다. 이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투표 성향이 앞으로 꽤 강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상위 10% 의식한 제한적 선택지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선택지가 좁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극재정 기조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 비중은 2017~2020년 1.2%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3~2017년 증가폭 1.8%포인트보다 못하다. 세금에 민감한 상위 10%를 의식한 결과다. 고령화에 따른 재정지출 증가 속에 재분배 의제가 부상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검찰·언론 개혁 등 정치적 갈등 의제를 활용해 고정 지지층을 묶어둔 뒤, 윤석열 정부에 실망한 중도 유권자 일부를 포섭하려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민주당이 이전의 정치 행태를 반복하는 건 나름의 합리성에 따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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