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왜 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끌어들이려는 것일까.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작전 지휘’와 ‘병참 관리’를 같이 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이끌기’ 힘들어서인지 ‘이기기’ 힘들어서인지 궁금하다. 누구보다 낯내기 좋아하고 리더십 증명에 매진해온 신진 대표 아닌가.
좋게 해석하면 김종인의 능력을 믿는 것일 게다. 김종인은 당 대선 후보가 뽑히는 11월5일 이후에 본인이 어찌할지 결심하겠단다. “나라를 이끌어갈 확실한 비전과 계획이 있고 그걸 지켜나갈 가능성이 있는 후보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한다”는데, 그냥 한다는 소리다. 후보 선출을 열흘 앞두고도 안 보이는 ‘비전과 계획’이 대선 후보로 뽑히면 본인 눈에 바로 확인되나? 정말 ‘자기 부심’이 넘치는 분이다.
그는 이기는 사람 편이다. 대놓고 싫어하던 후보(홍준표)와 한때 지도편달하고 싶어 조바심치던 후보(윤석열)가 순위 경쟁 중이다. 누가 최종 후보가 되든 자신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 그런 김종인과 손잡고 나아가려는 이준석의 마음은 뭘까. 혹시 자기 당 후보에게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건 아닐까. 나쁘게 해석하면 말이다.
김종인의 능력은 과대 포장돼온 측면이 크다. ‘정당 소생술사’나 ‘후보 감별사’라는 별명도 다소간 우연에 기댄 결과적 평가다. 망해가는 정당에서 전권을 잡아본 경험은 의미 있으나 그렇다고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나 오세훈 서울시장을 본인이 다 만들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2020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총선 참패 뒤 우왕좌왕할 때 그는 갑자기 “1970년대생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 후보”를 꺼내들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마치고 국민의힘을 떠나면서는 “그 당에 다신 안 간다”고 온갖 욕을 다 하고는 ‘초선 당대표론’을 슬쩍 내밀었다. 한국 정치에 “‘제3지대’는 없다”면서도, 정치에 뛰어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당(국민의힘) 밖에서 대선주자로 뛸 것을 적극 주문했다.
안목도 맥락도 없다. 유일하게 가리키는 바는 있다. 본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쪽으로 판이 짜이는 것. 그의 이런 처신에 일찍이 국민의힘 안에서도 날 선 비판이 나왔다. “노욕에 찬 기술자 정치”(장제원)라거나 “도를 넘는 상왕 정치”(홍문표)라고.
그의 장점이라면 촉각과 후각이 남달리 발달한 것이다. 민심이나 대세의 방향과 정도를 가늠하는 본능 말이다. 물론 이것만 해도 정치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비어 있다. 바로 ‘책임’이다.
그가 정파와 진영을 오가며 이루려는 대의가 무엇인지, 결과에 어떤 책임을 졌는지 잘 모르겠다. 최근 10년간의 이력을 보자. 박근혜의 한나라당(2011년)에 몸담았다가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2016년)으로 옮겼다. 다시 황교안의 미래통합당(2020년)으로 갔다. 매번 중요한 선거를 코앞에 두고 지휘봉을 잡는 식이었다. 늘 추대와 읍소를 거쳤다. 수틀리면 당을 떠난다 으르댔고 실제 떠나기도 했다. 그는 자리를 탐낸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바꿔 말하면 자리를 맡지 않았고 맡지 못했다. 응급처치에 맞는지 몰라도 정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지도자로는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이다.
김종인과 이준석은 선거라는 ‘큰 게임’의 설계나 감독은 자처했을지언정 이후 뒷설거지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이겨봤다는 ‘자기 서사’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 대체 국민의힘은 얼마나 인물이 없기에 당에 애정도, 미련도, 책임도 없는 이에게 또 중책을 맡기려는 것일까. 김종인의 재등판은 퇴행이다. 정당정치를 우습게 만든다.
정작 당을 소생시키거나 지도자를 감별해낸 이들은 명분과 의리를 지닌 오랜 당원들과 지지자들이다. 특히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는 나름의 절박함으로 우리 정당사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30대 0선 당대표라는 길도 열어줬다. 그들의 선택에 이준석은 그리 자신이 없나.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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