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윤석열 보니, 최재형이 현명했다?

등록 2021-10-24 02:50 수정 2021-10-24 11:30
2021년 9월17일 경북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마스크를 벗어 손에 쥐고 지지자 환호에 응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9월17일 경북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마스크를 벗어 손에 쥐고 지지자 환호에 응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갈수록 태산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또 ‘말’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엔 무려 ‘전두환 옹호’ 발언이다. 윤 전 총장은 10월19일 부산 해운대구를 찾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덧붙였다.

윤 전 총장의 발언은 여러모로 문제적이다. 5·18과 전씨를 떼놓고 생각할 수도 없을뿐더러, ‘폭압정치’를 한 전씨를 두고 정치를 잘했다고 평가한 것도 우려스럽다. “‘이완용도 나라 팔아먹은 것 빼면 잘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냐”는 여당의 지적을 정치 공세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동안 호남에 공들여온 국민의힘 내부에서마저 탄식이 나온다.

‘전두환 옹호’ 발언은 대통령이 되면 전씨처럼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나왔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사실상 ‘정치 롤모델’로 꼽은 전씨는 정부 요직에 노태우·박세직·장세동·황영시 등 전문성과 무관한 쿠데타 세력을 앉혔다. 또 집권 7년 동안 대기업 등에서 9천억원의 비자금을 받아 정치권·측근 등에 뿌리며 충성 경쟁을 유발했다.

윤 전 총장 발언의 파장은 해명할수록 더 커지고 있다. 논란이 일자 그는 “효과를 나타낸 것이 있다면 뭐든지 벤치마킹해서 국민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이라고 문제 발언을 재차 반복했다. 철학 부재, 국정 경험 부족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그가 ‘전문가 등용’ 카드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모양새였지만 오히려 국정철학 없이 ‘전문가 리스트만 갖고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라는 안이한 인식만 드러내고 말았다. “국가 지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대목도 아찔하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이미 그런 지도자를 경험한 바 있으므로.

그동안 윤 전 총장의 ‘문제적 발언’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집 없어 청약통장 못 만들어봤다”(부동산),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노동), “이한열 부마항쟁”(역사), “후쿠시마 폭발 안 해 방사능 유출 없어”(외교), “메이저 언론 통해 문제 제기해야”(언론), “남녀 교제를 막는 페미니즘”(젠더),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게 해줘야”(민생), “청약통장 모르면 치매환자”(환자 비하), “대구 아니었으면 코로나19 민란”(지역 차별) 등 열거하기도 버겁다. ‘1일 1실언’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윤 전 총장은 다른 설화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취지와 다르다”고 일축했다가 논란이 더 커지자 이틀 만인 10월21일 “설명과 비유가 부적절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언어는 한 개인이 경험과 사회적 학습으로 쌓아온 세계관의 발현이다. 그의 잦은 망언은 정치 신인인 탓에 정치언어와 공감능력이 미숙해서 생긴 해프닝이라기보다, 그의 세계관이 그 정도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머문다. 언어와 앎의 관계를 고찰한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오히려 기자들의 질문마다 “준비가 덜 됐다”고 대답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현명해 보인다고.

장수경 <한겨레> 편집부 기자 flying710@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