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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당권 잡기 딱 좋은 나이

‘나이 인플레’ 극심한 거대 양당, 0선과 초선의 분발을 기대한다
등록 2021-04-24 11:59 수정 2021-05-05 00:57
연합뉴스, 정용일 기자,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연합뉴스, 정용일 기자,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서점에서 김내훈의 <프로보커터>와 강준만의 <부족국가 대한민국>을 놓고 고민했다. 우리 정치사회 현실을 분석한 흥미로운 신간들인데 원래 책을 잘 안 읽는 나로서는 한 번에 둘 다 살 필요는 없었다. 앞의 책을 골랐다. 김내훈은 20대이고 강준만은 60대이다. 난세에는 나보다 어린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게 좋다. 지금 같은 ‘주목 경제’가 아니던 시절 별다른 대가 없이 기꺼이 자신을 갈아 넣었던 ‘0세대 레전드 도발꾼’ 강준만 선생은 이를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그분이 책 쓰는 속도가 내가 책 읽는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지라… 띄엄띄엄 따라갈 수밖에.)

정치만큼 ‘나이 인플레’가 극심한 영역이 있을까. 반백도 더 산 박용진(더불어민주당)과 오신환(국민의힘)이 양당의 대표적 젊은 정치인으로 꼽히니 더 말해 무엇 할까. 나이가 곧 기득권인 나라에서 정치라고 예외일 순 없겠지만 유독 심한 게 사실이다. 다른 분야에는 30대 수장이 적잖은데, 때론 30대라서 명백히 더 잘할 수도 있고 잘하고도 있는데, 정치권은 난공불락이다. ‘발탁’되거나 ‘육성’될 대상일 뿐이다. 표창원 전 의원은 이를 두고 ‘기성 정치의 식민지’라 표현했다. 정확한 비유이다.

나는 투표권이 생긴 이래 크고 작은 선거에서 되도록 더 젊거나 여성이거나 덜 가진 사람에게 표를 줬다. 덜 가진 것에는 재산과 가족, 학력(학벌)도 포함된다. 기득권에 덜 가까운 이가 더 잘하리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국민 다수가 덜 가진 쪽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감성과 생각과 바람을 지닌, 한마디로 ‘생활인 감각’을 지닌 정치인이어야 출퇴근 지옥철의 고행을 알고 전세금 올라 이사하는 설움에 공감하며 출발선은 달라도 경쟁 과정만큼은 정의로웠으면 하는 이들의 ‘벼랑 끝 이기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지는 쪽에 투표해온 셈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대신 이 꼴 저 꼴 다 보며 가능한 한 오래 살 생각이다.

두 거대 정당이 지도부 교체로 뜨겁다. 민주당은 ‘대략 마무리’ 중이다. 원내대표에 이어 당대표 선거에도 ‘대략 그 사람들’이 나섰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그 많은 ‘쪽수’의 초선 의원이 쥐 죽은 듯 있는 건 민주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반성문 내던 마음으로 아예 원내대표나 당대표 선거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못할 이유가 없다. 초선이든 다선이든 동등한 입법기관 아닌가. 경험이 없어 안 된다고? 관행과 절차를 잘 모른다고? 그런 건 당직자와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다 도와준다.

국민의힘은 살짝 ‘되는 집구석’ 느낌이 있다. 초선인 김웅 의원❶과 0선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❷이 당권 도전을 앞뒀다. 중요한 선거인지라 둘이 잘 의논해서 조율하겠다는데,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원내교섭단체가 셋 혹은 넷이 될 수도 있다고 점쳐지는 격변기이니 꽤 좋은 시점이라고 본다. ‘나이와 선수 기득권’을 부술 난세의 기회이다.

정당은 동아리가 아니다. 오래 한다고 잘하지 않는다. 나이나 서열, 의원 선수와 관록이 아니라 어떤 성장 배경과 경험을 지녔느냐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정치적 능력을 가른다. 가령 수십 년간 비례의원만 다섯 번 하며 ‘높은 사람’에게만 머리 숙여온 김종인과 10년간 지역구에만 도전하며 ‘구민들’에게 머리 숙여온 이준석 가운데 누가 더 유능한 ‘생활인의 감각’을 지녔겠는가.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가 노동당 대표가 되고 그 누구도 생각 못한 왼쪽 녹색당과 오른쪽 뉴질랜드제일당을 아울러 연립정부를 이뤄낸 게 그쪽 나이 서른일곱(우리 나이 서른여덟) 때다. 정당정치의 기본은 경쟁이다. 당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념과 가치를 두고 ‘실력껏’ 겨뤄야 한다. 서른일곱 살 이준석이 잘돼야 서른일곱 살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❸도 분발한다. 정치 거간과 공학과 뒤끝은 어르신들에게 맡기고 젊은 사람들은 그냥 정치, 기왕이면 ‘좋은 정치’를 하면 좋겠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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