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고개 숙이고 눈물만 흘린 2020년은 아니었다. 우리 삶을 더 높고 밝은 곳으로 밀어올리기 위한 싸움 또한 지속됐다. 장애나 성적 지향, 정치 성향,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말자며 ‘차별금지법’을,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자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여성을 무자비한 착취 대상으로 삼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범인들을 사법의 심판대에 올렸다.
고난과 희망이 교차한 2020년, <한겨레21> 독자에게 생생한 정보를 전한 취재원과 필자 19명이 ‘올해의 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보내왔다. _편집자주
오늘 우리 청소년기후행동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청소년들은 1.5도를 위해 다시 촛불을 들겠다’는 글을 올렸다. 마음이 허전하고 슬펐다. 5년 전 오늘 전세계는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며 기후위기 대응을 약속한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곁에는 행동 없는 거짓의 약속과 처참해지는 지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틀 전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기쁘기보단 어딘가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다.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석탄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는 쏙 빠졌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올해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요구하고 답하길 기다렸던 곳 중 하나가 국회였다. 어떻게 하면 국회가 기후위기를 실존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당장 행동에 나설 수 있을지, 더는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을지를 고민하며 우리는 ‘행운의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행운의 편지에는 기후위기가 모든 세대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며,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지금 당장 구체적인 약속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과학자들이 예측한 기후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채웠다.
9월22일 우리는 행운의 편지를 정성껏 써서 국회의장과 정당 지도부, 주요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 국회의원 15명에게 먼저 전달했다. 또한 온라인으로도 한 번에 1천 개 넘는 전자우편을 보냈지만, 예상과 달리 9월27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 딱 한 명한테만 성의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혜영 의원은 “살면서 받아본 가장 엄중하고 무서운 편지”였다며 “생존을 위한 변화를 위해 함께 연대하자”고 답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금융기관 석탄 투자 금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2배 이상 강화, 1.5도 이내 억제 가능한 법안 마련, 2030년 탈석탄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답장은 없었다. 우리는 더 많은 의원에게 행운의 편지를 보냈고 의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까지 행운의 편지를 받은 의원 77명 중 39명만 응답했다. 그마저도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호영 국민의당 원내대표처럼 영향력 있는 의원들은 편지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의힘 의원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그저 대통령의 선언에 발맞추는 듯 먼 미래의 일로 기후위기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변화가 참 더디다는 걸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기후위기 문제는 너무 심각한데 조급한 건 우리뿐이다. 과학자들은 자꾸 기후위기로 생태계가 붕괴하고 기후재난이 일상이 되리란 걸 증명한다. 상실감과 우울감이 몰아치지만 그래도 행동하는 것이,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기에 우리는 계속 움직일 것이다.
창밖엔 올해의 마지막 보름달이 깜깜한 어둠 속을 밝게 비추고 있다. 저 밝은 보름달을 빌려, 2021년에는 국가가 기후를 위해 진정으로 움직여주길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우리나라가 기후 선진국이 될 때까지 끝까지 뛰어다닐 것을 저 밝은 보름달에 약속한다.
이수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 제1328호 표지 이미지에는 방역복을 입고 양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청소년이 등장합니다. 한여름에 땀 흘리며 기후재난 현장을 기록한 이수아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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