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1970년대생뿐 아니라 여성 정치인 자체가 별로 없잖아요.”
“‘포스트 86세대’로 꼽을 여성 정치인을 찾기 쉽지 않다”고 하자, 장하나(43·‘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계질서가 강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오랜 기간 권력을 잡으면서 ‘50대·중년·남성’을 벗어나는 다른 목소리가 자라날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70년대생 여성 정치인은 절대적으로 그 수가 적어 눈에 띄지 않는다. 21대 국회에 처음 지역구 의원이 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1970년생)이 언론의 주목을 잠깐 받았지만, ‘전문가 몫’으로 공천된 정도지 특이점이 보이진 않는다.”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란 오랜 편견은 여성 정치인의 토양을 척박하게 한다. 국제의회연맹(IPU)이 밝힌 여성 의원 비율 순위(2020년 10월 기준)를 보면, 한국은 192개국 중 119위로 하위권이다. 21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57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이지만, 비율로는 19%에 그친다. 국회 회기가 바뀔 때마다 여성 의원 비율은 2%포인트씩 겨우 늘었다.
이런 불균형은 정치판에서 자본과 인력 네트워크 등을 독점하는 강고한 남성 연대가 작동하는 탓이 크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정계에서 여성이란 단점을 상쇄하려면 재선·3선 등 선수를 계속 쌓을 수밖에 없는데, 비례로 국회에 들어온 초선 여성 의원이 지역구 공천을 받으려면 남성 네트워크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가능하다”며 “(70년대생 여성 정치인이) 아직 당내 남성 네트워크에 충분히 진입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공천 과정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소신이나 자질보다는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나 지역위원장에게 얼마나 충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잣대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는 여성 의원 수 증가와 별개로 남성중심적인 정치문화를 공고히 하는 결과도 낳는다.
물론 김현미, 유은혜, 진선미 등 일부 60년대생 다선 여성 의원 또는 정치인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여성 장관이) 현 정부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할 뿐, 여성 정치인이 성장하는 통상의 경로로 굳어졌다고 보긴 어렵다.”(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그동안 다른 당에서 여성단체 출신을 국회의원으로 영입했지만 그들이 젠더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싸웠다고 보기엔 미약한 점이 있다”며 “공천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으면 그다음 당선을 보장받지 못하다보니, 기존 정치문화에 순응하는 것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토양 위에서 70년대생 여성 정치인은 ‘남성 영역에 들어온 침입자’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같은 70년대생인데도 남성 정치인들과 비교해 여성 정치인들은 당대표나 지자체장, 대선 출마를 거론하기조차 쉽지 않다. 여성 정치인이 처한 딜레마다. 안숙영 계명대 교수(여성학)는 “여성 정치인은 남성과 (자질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는 동시에, 지나치게 남성적이면 호감이 가지 않는 정치인으로 간주된다. 반대로 지나치게 여성적이면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는다”고 짚었다. 여성 의원은 남성 의원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고, 더 눈에 띄는 경력이나 인맥을 갖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권수현 대표는 “예를 들어 고민정, 강선우, 이재정 의원 등 70년대생 여성 의원들이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남성중심적인) 당의 통합을 반대하는 요소’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정치가 남성만의 공간이라는 인식을 넘어서려면, 일단 여성 의원의 절대적인 수가 늘어나는 게 필수적이다. 여성계에서 현행 여성할당제를 강화해 지역구 여성 공천 비율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는 공직선거법에 ‘비례대표 여성 공천 50%’만 의무조항으로 뒀을 뿐 ‘지역구 여성 공천 30%’는 강제성 없는 권고조항으로 ‘노력한다’고만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21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여성 공천 30%”를 외쳤지만 실제 지역구에 공천된 여성 후보자 비율은 민주당 12.65%, 국민의힘 10.97%에 그쳤다. 박선영 선임연구위원은 “정당이 성별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여성할당제 강화 등 제도화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입한 여성 의원이 지역구에 공천돼 재선에 성공하는 비율이 국회 회기를 거듭할수록 떨어지는 점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17대 국회에선 30.3%였다가 18대 15.2%, 19대 10.7%로 크게 낮아졌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기대만큼 활발하게 국회 내 여성 의원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새누리당(현재 국민의힘)은 19대 여성 비례대표 의원 중 단 한 명도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공천하지 않았다.
“여성 정치인은 수가 너무 적어서, 86세대와 70년대생 세대별 분석을 별도로 해보지 않았다.” “70년대생 여성 정치인이 적은 이유는 세대보다 성별 변수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70년대생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정치권 안팎에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여성 의원들이 ‘토큰’(token)처럼 국회에서 활용된다는 방증이다. 이른바 ‘토크니즘’은 실질적인 권한은 부여하지 않으면서 여성 등 소수집단 일부만을 뽑아 구색을 갖추는 행위를 뜻한다.
젠더·세대 등 다양한 국회의원의 등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국회 안에서 다루는 정책 의제도 제한적이다. 구색 갖추기만으로 힘의 불평등은 바뀌지 않는다. 권수현 대표는 “이런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강력한 의지를 품은 리더가 등장하거나, 여성 정치인들끼리 결속해 네트워크를 만들지 않는다면 (여성 정치인이 눈에 띄지 않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참고 문헌
가상준·박진수·이재묵, ‘여성 비례대표 의원들의 임기 후 경력 선택’, <담론201> 21권 1호, 2018년
김현희·오유석·박인혜, ‘경력 지속에 성공한 지방 여성 의원들이 본 여성정치의 딜레마’, <동향과 전망> 105호, 2018년
안숙영, ‘젠더와 정치공간: 여성 정치인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30권 2호,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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