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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운명의 대회전!

명절 민심
등록 2015-09-24 20:38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명절 민심은 한국 정치의 가장 강력한 ‘추상’이다. 추상이지만 구체적인데, 그 구체성은 끝끝내 증명되지 않곤 한다. 과문한 탓에 바다 건너 나라들에도 비슷한 정치적 추수의 시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한국의 정치집단들은 1년에 두 번 민심의 넓이와 깊이를 나름의 잣대로 재는 측량에 나선다. 선거를 불과 6개월여 앞두고 있다. 올 추석 민심의 의미는 더 각별하고 더 대단한 무엇으로 ‘적시’될 것이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했던가. 올 추석 민심을 가를 재료는 풍성하다 못해 아찔할 정도다. 가장 유력한 미래 권력이자 집권 여당의 대표가 못난 사위를 두었다는 사실은 영화 의 세계가 얼마나 구체적 리얼리티를 갖추고 있는지와 연결될 것이다. 1천만 이상의 민심을 얻은 그 영화의 결말이 어땠는지를 기억해보면, 여당 일각에서 시작된 그에 대한 ‘축출’ 시도가 어떻게 귀결될지를 점치는 일은 올 추석 가장 흥미진진한 논쟁이 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사기 하나는 벌써부터 ‘그 집’에서 벌어졌을 어떤 기막힌 사건들에 대한 흥미를 돋우고 있다.

한국노총이 빚어낸 ‘공정해고’ 국면도 밥상의 귀퉁이를 장식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밥상에도 당대의 노동조건 때문에 괴로운 이가 한둘은 앉을 것이고, 그들이 이 합의를 ‘그러려니’의 문제로 발화하느냐 아니면 ‘되찾아야 할 권리’로 비분강개하느냐에 따라 다가올 선거의 양상은 사뭇 달라질 수 있다. 노조가 쇠파이프를 들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못 갔다는 말이 공공연해도 별다른 파급이 없는 사회라는 점이 좀 찜찜하긴 하지만, 노동의 문제야말로 척박함에 날로 황폐함이 보태지는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뇌관이다.

야당의 지리멸렬도 넋두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싸우다 멈추고 또 싸우곤 하는데, 왜 싸우는지는 모르겠는 사람들의 정치 평론이 만발하면, 지난 대선부터 내리 존재 없음의 존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의 한계와 무능에 대한 비감이 폭발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폭발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로 극적 형질 전환되지 않으면, 야당에 다가올 총선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추석 민심이 어찌됐건 정권 심판에 있다고 주장할 야당의 민심 추수가 궁색해지면, 혁신을 하고 있지만 혁신이란 말을 차라리 총체적 재혁신해야 할 지경으로 곤두박질할지 모른다.

심상치 않은 한반도의 외교적 조건도 6·25를 거쳐온 어느 어르신의 심상에 심각하다고 받아들여지면, ‘무찌르자, 공산당! 잊지 말자, 일본!’의 긴 훈시로 이어질지 모른다. 미사일을 둘러싼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고, ‘안보법’을 비롯해 오른쪽으로의 질주로 이미 미운털이 박힌 아베 정권은 MBC 예능 이 하시마섬 편을 거치며 이제 초등학생도 미워하는 ‘공공의 적’이 됐다. 이 외교적 긴장과 고착 상황을 오로지 ‘이산가족 상봉’ 카드 하나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정부의 무능까지 내다볼 혜안이 어느 집, 누군가에게 있다면 이 문제야말로 내년 총선의 운명을 가를 대회전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결국, 기기와 경합할 것이다. 손안에 들린 또 다른 세계에 몰입해, 지금 여기의 문제에 비껴서는 누군가들을 향한 불평과 공격이 밥상을 덮칠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세상의 어떤 인류들은 0과 1의 반복에서만 무한의 영감을 얻도록 체질을 바꾸고 있고, 이슈는 더 이상 이슈와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새롭게 열린 세상 자체와 맞서야 한다. 부디 당신의 이번 추석이 ‘그게 무엇이건 어떤 대화이건’ 온전한 소통을 향한 도전이길, ‘헬조선’의 염증과 냉소를 넘어서는 발화로 풍성하길 기원해본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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