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도식에서 아들 노건호씨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직설적으로 비판한 일이 장안의 화제다. 이에 대해 TV조선 등은 ‘친노 세력’이 배후로 있을 거란 분석을 내놓았고, 안 그래도 내홍을 겪던 새정치민주연합은 해석이 분분하다.
‘서사’만 있을 뿐 ‘대화’는 불가능한
이를 보면 우리 사회엔 이제 ‘서사’만 있을 뿐 더 이상 ‘대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노건호씨 발언에 대한 섣부른 비판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정치인이 아닌 그에게 정치적 후과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가령 정청래 의원에게 ‘선수’의 처신을 원하는 건 책임윤리에 대한 요구일 수 있으나, 아버지를 잃은 아들에게 그런다면 폭력이 되기 십상이다. 모두에게 정치인의 수싸움을 요구하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그렇더라도 발언에 대해선 따져볼 수 있다. 가령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란 부분이나 “암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란 부분은 김 대표에게 억울하게 들릴 게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기 정권 실세나 검찰 수뇌부가 아니었고 후자에 대해선 진실 공방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와 같은 부분엔 별로 반박할 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직접 한 짓과, 박근혜 선본의 핵심 인물로서 설령 몰랐다 한들 책임을 져야 할 일의 열거이니 말이다.
여기서 문제는 노건호씨가 그러거나 말거나 김무성 대표는 답을 안 할 거란 사실에 있다. 김 대표에게 필요한 건 그 지점에서 노씨의 오해를 일부라도 푸는 것이 아니다. 그에겐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게 예를 표했으나 그에게 거절당했다는 그 ‘서사’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노씨는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라고 빈정댔지만 이 추도문에선 이 문장만이 현실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김 대표는 바로 그 ‘대인배 인증’을 하려고 거기 나타난 것이니 말이다.
노건호씨의 발언 뒤편에 ‘친노 세력’이 있을 거란 TV조선의 추정은 또 어떠한가. 그들에겐 노씨의 발언 중 어떤 부분이 동의할 만하고 어떤 부분이 그렇지 않은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뒤에 모종의 ‘작전세력’이 있을 거라는 진단만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모두가 자기 머릿속에서 ‘서사’를 쓰고 그 속에 존재하는 악역을 상대방에게 덧씌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 지지자끼리만 이러는 게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 사정도 이와 흡사하다. 노건호씨야 아들 입장에서 한 처신이라 치자. 그곳에 나타난 ‘비노’로 분류된 야권 정치인들에게 야유를 퍼부은 이들은 뭘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들은 ‘친노’의 실체는 없다 말하면서, 그 ‘친노’와 대립한다는 ‘비노’ 정치인들에 대해선 ‘노무현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모순된 태도를 왜 취한 걸까. 그들은 자신들만이 노무현을 전유했다 믿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은 노무현을 탄압했던 기득권 세력에 등치시킨다. 마치 그 반대편에서 ‘영남 패권주의’나 ‘친노 패권주의’란 언어로 그들을 규탄하듯이. 이 상호 ‘서사’에서 가능한 결말은 번갈아 대표단을 차지했다가 선거에 지면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흔드는 아수라장뿐이다.
진보정당 내부도 연예인 팬덤도
그들만 한심한 것도 아니다. 이권을 위해 통일된 ‘서사’ 속에 단합하는 새누리당을 제외한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이 이런 식이다. 진보정당 내부의 논쟁도 다르지 않고, 심지어 스포츠 팬덤과 연예인 팬덤 내부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서사’만이 충돌하는 곳에서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대화도 타협도 불가능한 ‘작전세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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