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적응할 법도 한데, 늘 소름 돋게 생경하다. 이제는 발 딛고 사는 사회의 못남을 인정하고 수긍하려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자괴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늘 다른 이유지만,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매일 새로운 사실들을 탐해야 하고, 어지간한 일에는 이제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참 적응이 어렵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은 소식이 예고도 없이 훅 날아든다.
5월13일 오전 내내, 뉴스 속보 알림 메시지로 스마트폰이 치를 떨었다. 국회 정보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매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뿜어낸 언어들이 잔혹함의 경연을 벌였다. 근데 뭔가 묘하게 어느 구석엔 시시덕대는 것도 같았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하다. 인민무력부장. 우리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까마득하게 높은 인사가 ‘고사포’라는,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간 굉장히 위력적일 것 같은 무기로 ‘공개처형’을 당했다는 것이다. 가족이 지켜봤다고도 하고, 수백 명이 ‘참관’했다고도 한다.
나보다 조금 어린 또래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에서 고위 관료 70여 명이 ‘숙청’됐다는 국가정보원의 보고는 은밀한 그 출처에 비해 내용은 너무 구체적이고, 시기는 또 늘 너무 노골적으로 골라 나온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마땅한지 가늠이 사실 쉽지 않다. 중국은 잘 모르겠다고 하고, 러시아는 확인해보겠다는 미지근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부디 우리 국정원의 대북 정보원이 동아시아의 경쟁국들을 압도하는 훌륭한 ‘빨대’이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아무튼 온 국민이 ‘고사포’라는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탐구하여, 잠깐이나마 철책 너머의 그 무기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 국민적 대북 억하심정을 분노로 조직하기 위해 불철주야 종합편성채널들이 떠들기 시작했을 무렵, 더 잔혹하고 참담한 소식이 전해졌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죽음이 전해지던 때보다 더 빠르고, 더 강렬하고, 더 다급하게 스마트폰이 울었다. 슬픔과 충격의 진동이었다. 얼마나 다급했는가 하면 언론마다 사망자 수가 달랐다. 애초, 사망자가 3명이라고 했던 국가기관 뉴스통신사는 조금 뒤엔 1명이라는 속보를 다시 냈다. 오보 정정은 없었다. 다만 ‘내용 없음’이란 괄호만 있었다. ‘냉무’ 속보가 앞선 속보의 오류를 쾌속 정정하며 이후에도 사망자 수는 꽤 오래 더 흔들렸다.
한 번이라도 예비군 훈련을 가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 현장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부조리를. 뿌리가 어디인지를 더듬기조차 쉽지 않은 관료적 안일함과 그 안일함을 아무 생각 없지만 더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기어이 때워야만 끝내버릴 수 있는 강요된 의무의 참을 수 없는 지겨움의 반복. 예비군 훈련장의 총기 사고는 그래서 정말이지 충격적이지만 한국 사회의 익숙한 관성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언제든 격발될 수 있던 문제가 늦게 들켜버린 사건이기도 하다.
누군가 불손한 결심을 하면 불특정 다수가 불우한 희생을 당하는 위험사회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근대 이후 정부의 공통된 몫이다. 세월호 참사 뒤 줄곧 ‘안전’을 입길에 올렸던 대통령의 말은 문법에 안 맞았지만 결국, 그것이었을 것이다. 예비군은 김신조 일당이 걸어서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침투했던 1968년에 우리 사회가 도달했던 결론이었다. 그 사고를 막을 가장 완벽한 방법은 예비군 폐지뿐이다. 너무 과격하다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인 1971년 대선 때, 당시 ‘40대 기수’였던 DJ가 내걸었던 주요한 공약 중의 하나가 바로 ‘예비군 폐지’였다. 정확히 44년 전, 야당은 그 파격적인 공약 하나로 젊은 세대의 투표 욕구에 불을 댕기고, 남북 대결 시대의 종식 세력 지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번주 내내 지리멸렬했던 2015년의 야당이 그걸 알까 모르겠다.
김완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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