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장벽’과 ‘DMZ’의 거리

등록 2014-04-05 16:35 수정 2020-05-03 04:27
<ahref href="mailto:morgen@hani.co.kr">morgen@hani.co.kr">



독일이란 나라는 두 개의 큰 강이 사선으로 흐르며 넓은 영토를 가로지르는 모양새를 띤다. 중서부를 유유히 내달리는 라인강과 북해와 동남부 사이를 흐르는 엘베강이 주인공이다. 독일 역사는 두 강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굴곡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역사 무대에 먼저 올라선 지역은 라인강 유역이다. 이 지역은 로마제국의 앞선 문명이 서유럽에 수용되는 길목이자, 이른바 서유럽 역사에서 ‘문명’의 북방한계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엘베강을 낀 지역이 주인공으로 나선 건 한참 뒤인 중세 말기 무렵이다. 독일 수도인 베를린이란 지명의 어원이 ‘곰’에서 유래한 것도, 엘베강 동쪽 너머에 자리잡은 이곳이 울창한 숲에서 곰이 출몰하던 미개와 야만의 땅이었음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이 지역을 바탕으로 부쩍 힘을 키운 프로이센은 결국 19세기 중·후반 수많은 제후국으로 잘게 쪼개져 있던 독일 전역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데 성공한다.
때로, 역사는 흥미로운 아이러니로 가득 차곤 한다. 20세기 들어 동과 서로 갈린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장벽으로 갈린 베를린시를 품은 동독 사회의 ‘지배세력’ 역시, 길게 보면 옛 프로이센 계열이었다. 독일 근대사에서 프로이센에 마지막까지 저항한 대표적인 종족으로는 바로 동독 남부를 근거로 한 작센족을 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사회주의 동독 내에서도 프로이센과 작센의 갈등은 오래도록 잠복해 있었던 셈이다. 동독 말기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담은 곳이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 등 동독 사회에서조차 차별받고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변방의 작센 지역이라는 사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통일 이후의 삶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던 곳 역시 이 지역이다. 동독을 흡수한 서독 정부가 통일 이후 이 지역에 대규모 지원과 투자에 나선 배경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3월28일 유럽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공과대학에서 이른바 ‘드레스덴 독트린’을 발표했다. 낙후된 변방 도시에서 하루아침에 ‘통일 대박’의 상징으로 비치기에 충분한 곳이다.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서는 섣부른 ‘통일 대박론’이 퍼질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독일과 한국 두 나라가 걸어온 역사적 배경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권위주의적인 사회주의 정권을 향해 “우리가 인민(das Volk)이다”라고 외쳤던 초기 동독 시위대의 함성이 “우리는 한 민족(ein Volk)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슬그머니 바뀌는 과정이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나의 도시를 인위적으로 두 동강 낸, 불과 몇m 높이의 베를린장벽과, 남북을 갈라놓은 극도로 중무장된 비무장지대의 존재감을 단순 비교하긴 힘들다. 더욱 차분하게 결과보다는 과정의 시각에서 통일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 어느새 완연한 봄입니다. 사내 정기 인사로 다음주부터 얼굴들이 일부 바뀝니다. 이지은(사회2부), 이세영(정치부), 오승훈(탐사보도팀), 김외현, 서보미(정치부) 기자가 로 옮깁니다. 빼어난 글솜씨와 넘치는 열정으로 지면을 빛내온 기자들입니다. 이들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에서 재능 있고 활기찬 새 식구들을 맞는 기쁨으로 대신하렵니다. 송호진, 송채경화(정치부), 이정연(사회부), 이완(경제부), 허윤희(편집팀) 기자가 주인공입니다. 오고 가는 기자들에게 많은 격려와 애정 부탁드립니다.</ahref>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