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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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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이라는 숫자

등록 2014-02-25 13:26 수정 2020-05-03 04:27




어릴 적 기억 하나.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무렵이면, 으레 안방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마당에 나가 배달된 신문을 집어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낮은 음성의 아버지 목소리였다. 달콤한 잠자리를 떨쳐나오기 싫을 때나, 특히 겨울철 눈 내린 마당을 맨발의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냉큼 신문을 집어오는 일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딴엔 한때 이런 몽상도 했더랬다. 매일 아침 어디선가 마법처럼 활자들이 날아와 새로운 소식들을 집에 있는 신문 종이에 채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훗날 어느 자리에선가 문득 어릴 적 일이 생각나 친구들한테 말한 순간, 폭풍처럼 날아든 대답. “네가 무슨 스티브 잡스라도 됐단 소리냐?” 일상 속 작은 아이디어 하나 현실로 바꿔놓을 깜냥이 없는 내 자신을 무한 탓할 일이나, 그런 상상을 잠시 했었다는 ‘팩트’마저 여지없이 뭉개질 땐, 솔직히 억울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상상력 예찬론이 마구 들끓는다. 국적 불명의 구세대 관치경제에 상상력이란 색깔을 덧입혀 슬그머니 ‘창조경제’ 상품으로 선전하는 목소리도 높다. 고루하고 획일화된 잣대로 상상력을 억누르는 보수 정권의 퇴행적 행보가 갈수록 우리 사회를 음울하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눈앞의 현실에 견주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더 큰 용기와 더 담대한 행보로 사회적 상상력의 용광로를 뜨겁게 달궈야 할 게다. 논쟁적 주제인 기본소득을 굳이 1000호 표지이야기로 소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일부 국내외 지지자들의 신념과는 별개로, 아직은 현실성이 극히 떨어지거나 되레 부작용마저 낳을 수 있는 카드인지 모른다. 특히나 기초적인 복지제도망을 짜는 일조차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로서는 양날의 칼일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전세계적으로 ‘분배의 재구성’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생존 프로젝트’가 된 지 오래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생산의 결과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나눠가질 것인가가 우리 삶의 터전인 공동체를 지탱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르는 열쇠다. 지금껏 익숙했던 ‘그들의’ 자본주의는 분명 수명을 다했다. 우리의 상상력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표지에 드디어 1000이란 네 자리 숫자가 찍혔다. 1994년 3월 세상에 태어난 지 스무 해 만이다. 공식적인 창간 20주년 기념호는 2주 뒤인 1002호와 1003호 두 차례에 걸쳐 발행되지만, 1000호에서 1003호에 이르는 한 달 내내 사실상 생일잔치가 펼쳐진다. 지난주 예고해드린 대로,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은 추억의 코너를 되살린 ‘리바이벌21’ 섹션을 이번주부터 4주간 꾸민다. 추억의 필자 중엔 매주 마감 시간이 늦어 식구들을 유난히 애태우게 만든 장본인도 있다. 평소보다 두툼한 특집호이다보니 인쇄 제작 시간을 평소보다 앞당겨야 했음에도, 역시나 그 필자분은 이번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단단히 애를 먹였다. ‘상습 마감 지각’마저 리바이벌한 모양이다^^. 속은 식구들이 태웠으니, 독자들은 마음껏 추억의 코너를 즐겨주시길.


1000호엔 창간호부터 999호까지 표지를 한데 모은 대형 브로마이드가 특별선물로 들어 있습니다. 999개의 표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표지 5개를 골라주세요. 발행 호수 또는 헤드카피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해당 표지의 사진을 찍어 보내주셔도 됩니다. 열 분을 추려 상품을 드립니다(3월7일까지, morgen@hani.co.kr). 홈페이지(h21.hani.co.kr)에서도 표지 모음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 하나! 브로마이드를 소중히 간직하세요. 1002호에 진행될 창간 20주년 기념 퀴즈큰잔치는 브로마이드에서도 한 문제가 출제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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